글 | 정상현(자동차 저널리스트)


제네시스


과거 우리나라 고급차 수요층들이 자동차 메이커에 바라는 건 무척이나 명확했습니다. 부드럽고,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자동차일 것. 그동안 현대자동차가 만들었던 대형차들은 이 세 가치를 잘 채워주는 것들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팔렸던 그랜저 XG나 1세대 에쿠스, 다이너스티만 하더라도 부드럽고 조용하고 편한, 그야말로 ‘전통적인 고급차’였으니까요.


현대자동차

[그랜저 XG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고급차는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고급차에 대한 소비자 니즈는 우리나라와 살짝 달랐습니다. 고급스러워야 한다는 건 당연하고, 비싼 차이므로 ‘잘 달리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대한민국 메이커가 만든 고급차는 세계 시장에서 늘 인기가 시들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우리나라의 고급차들은 운전 재미나 달리기 성능보다는 기사에게 운전을 맡기고 뒷자리에 앉는 게 어울렸거든요. 결국, 이처럼 국내 실정만을 고려한 고급차로는 수출시장을 공략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아울러 국내 소비자들 또한 점차적으로 ‘그저 편한 고급차보다, 잘 달리되 편한 고급차’를 바라기 시작했죠.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1세대 제네시스. 그 동안의 고급차와 상당히 다른 성격을 지닌 모델이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이러한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재빨리 감지하였습니다. 그리고 2008년 1월, 신개념 고급차인 제네시스(BH)의 1세대 모델을 출시하기에 이릅니다. 전통적인 고급차의 가치는 물론이거니와 운전의 즐거움과 동적 성능까지 아우른 첫 뒷바퀴 굴림 럭셔리 세단이었죠. 이는 당시의 슬로건인 ‘The dynamic luxury’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럭셔리와 다이내믹이라는 서로 상충하는 가치. 이를 한 차에 담아내고자 연구진들이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거든요.


제네시스


개인적인 얘기지만 저는 1세대 제네시스가 출시되자마자 녀석을 1,000km 넘게 시승했었습니다. 충격적일 정도로 조용하고 쾌적한 실내, 뒷바퀴 굴림 특유의 차분한 주행감, 출력 특성이 좋은 엔진과 동력전달 효율 높은 변속기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 차는 분명 현대자동차가 그동안 만들었던 차들과 달랐습니다. 엄청나게 열심히, 그리고 잘 만들고자 한 티가 곳곳에서 묻어났으니까요.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느슨한 핸들링은 독일 라이벌과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였고, 시속 140km 이상에서의 고속안정성은 ‘실망’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게 적당했습니다. 특히 고속 영역에서 노면 정보를 거의 전달하지 않는 스티어링은 운전 재미를 크게 깎아 먹었었지요. 하지만 당시에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었습니다. 그 차는 고작 제네시스의 ‘1세대’ 모델이었으니까요. 처음 만든 후륜구동 고급차였으니까, 그저 다음 세대 모델을 차분하게 기다리면 될 일이었습니다.


제네시스 시승기


그리고 2013년 11월, 드디어 2세대 제네시스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세대의 부족했던 부분들을 채우고 다듬는 건 물론이고 스타일마저 1세대보다 안정적이고 젊은 분위기로 만들어 이제야 진정한 ‘다이내믹 럭셔리’ 세단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지요. 특히 출시 전부터 ‘녹색 지옥’이라고 일컬어지는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긴 시간 동안 테스트했다는 소문이 퍼져 수요층은 물론이고 자동차 매니아들까지 설레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제네시스 시승


이번에 시승한 차는 2세대 제네시스의 2015년형 모델입니다. 315마력을 내는 3.8L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 H트랙(HTRAC)이라는 이름의 사륜구동 시스템이 파워트레인을 구성하고 있으며 호화로운 장비들과 커뮤니케이션 컬러인 코스트 블루 페인트를 칠해 스포티하며 고급스런 이미지를 동시에 풍기고 있습니다.


HTRAC 자세히 알아보기



제네시스


신형 제네시스의 크기는 상당합니다. 길이는 5m에 이르고 폭은 1,890mm, 휠베이스는 3,010mm에 달할 정도라서 유럽 기준으로는 F세그먼트의 턱밑까지 추격하는 격이지요. 이런 연유로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순간, 길고 늘씬하게 뻗은 보디가 시선을 잡아끄는 걸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다시금 소소한 디테일을 살펴본다면 선대 모델보다 한층 차분하고 단정해진 포인트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15년형 제네시스


‘생선뼈’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릴이 육각 형태로 단정해진 건 2세대로 접어들며 안정화 된 플루이딕 스컬프처 2.0의 영향. 크롬으로 장식되었던 18인치 휠도 19인치로 크기를 키웠지만, 디자인과 처리 방식은 한층 차분해진 모습입니다. 뒷모습도 권위적이었던 1세대 모델과 달리 스포티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듯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급차치고 다소 검소해 보인다는 생각이 드는데, 풀 LED화를 이룬 테일램프를 보는 순간 이런 생각이 틀렸다는 걸 즉각적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제네시스 2015


실내 분위기는 곡선 기조였던 구형과 달리 직선 위주의 디자인으로써 한층 성숙해졌습니다. 큼지막한 9.2인치 모니터와 아날로그 시계가 ‘고급차’라는 걸 느끼게 하고, 4스포크 스티어링 휠과 높게 올라앉은 센터터널이 스포티하면서도 고급스런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윈드실드에 정보를 표현하는 HUD(헤드 업 디스플레이)는 3.3L 엔진의 G330 프리미엄부터 기본으로 장비되는데 2015년형에는 수평 기울기 조절 기능까지 더하며 운전자를 향한 배려심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2015 제네시스


편의 및 안전장비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합니다. 가장 기본모델부터 미쉐린제 타이어가 기본으로 끼워지고 9개의 에어백도 기본으로 장비하고 있습니다. 공조장치는 운전석과 조수석, 뒷좌석의 온도를 개별 설정할 수 있는 3존 타입이며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와 내비게이션도 기본입니다. 


제네시스 시승기


시승차는 이른바 풀옵션 모델로서 17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렉시콘 사운드 시스템, HUD, 듀얼 HID 램프가 장비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3.8L 모델에 기본인 어라운드뷰 모니터링 시스템은 주차나 골목길 서행 시 큰 차체를 부담 없이 움직이게 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줍니다. 실내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진짜 나무로 짠 오픈포어 리얼우드 트림. 나무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이 차를 그야말로 럭셔리카로 느껴지게 하는 요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네시스를 구입하고자 하는 이에게 반드시 추천하고픈 옵션에 속합니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자율주행차 수준의 안전장비도 신형 제네시스의 강점에 해당합니다. 앞차의 속도에 따라 자동으로 가감속하는 어드밴스드 크루즈컨트롤은 고속도로 주행 시 과속단속카메라 앞에서 자동으로 속도를 줄이는 기능까지 더했습니다. 아울러 앞차가 급정지할 경우 자동으로 차를 꾹하고 세우는 긴급제동 시스템과 운전자가 차선을 벗어나려 하면 운전대에 진동을 보내 경고하는 진동경고 스티어링 휠도 장비하였습니다. 무엇보다 2015년형 모델로 거듭나며 더해진 주행 조향보조 시스템(LKAS)이 눈길을 끄는데요. 이를 활성화 시킨 상태라면 운전대에서 손을 떼어도 차가 자동으로 차선에 따라 조향하며 무인차처럼 주행이 가능합니다. 물론 이를 맹신할 수는 없지만, 제네시스를 통해 기술의 발전을 체감하고, 이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일 것입니다.


[2015 서울모터쇼] 자동차 기술을 전하는 현대자동차 테크 토크 및 지능형 고안전차 시승체험



제네시스 시승기


에쿠스 바로 아래에 포지셔닝하는 고급차답게 뒷좌석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습니다. 길쭉한 차체와 휠베이스 덕에 풍요로운 공간을 제공하며, 항공기 비즈니스 클래스처럼 시트를 누일 수 있는 전동시트 기능도 갖추고 있습니다. 뒷자리를 위한 2개의 모니터는 3.8L 프레스티지에서 옵션(247만원)으로 제공되며 파이니스트 에디션은 기본으로 장비하게 됩니다.


제네시스


제네시스를 몰았을 때의 첫 느낌은 '부드럽다'는 것입니다. 현대자동차의 주장대로라면 폭발적이고 날카로우며, 때때로 거친 맛도 있을법 한데 실제 주행 때의 느낌은 꿈결처럼 고요하고 조용하며 부드러울 뿐입니다. 서스펜션은 늘 차분하게 움직이며, 노면의 충격을 거의 전달하지 않습니다. 차체 강성이 좋은 탓인지 높낮이 차가 큰 충격을 밟아도 마운트를 통해 소음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은 좋은 인상을 주기 충분했습니다.


제네시스 2015


평상시의 엔진 회전은 2,000rpm을 넘길 일이 없을 정도로 낮게 유지됩니다. 기어비를 잘게 쪼갠 8단 자동변속기는 기어가 언제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부드럽게 변속되어 편한 운전에 대한 만족감을 높입니다. 다만 2톤의 무게 탓인지 시내에서의 발진 가속은 조금 답답한 느낌입니다. 사륜구동과 폭 275mm의 리어 타이어를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이지만 '스포티'와 거리가 먼 움직임은 때때로 실망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제네시스 시승기


하지만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깊게 밟으면 차의 특성이 완전히 뒤바뀝니다. 315마력의 람다 3.8L 엔진은 수치상의 출력보다 실제 가속이 훨씬 더 강렬한 게 인상적입니다. 고속도로 제한속도를 훌쩍 웃도는 영역에서도 거침없이 올라가는 속도계는, 과연 3.8L 엔진을 품은 것이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아울러 평소 고분고분하게 기어를 넘기던 변속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폭력적으로 기어를 바꾸며 적극적인 가속을 이끌어 내 만족스러웠습니다. 1세대 제네시스의 후기형에 올라간 8단 AT는 이와 달랐었는데, 아무래도 세대가 바뀌며 변속기도 약간의 개선을 이룬 것으로 보여집니다.


2015 제네시스


1세대 제네시스의 약점이었던 고속안정성도 눈에 띄게 개선되었습니다. 네 바퀴 굴림의 영향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공력 특성이 좋아진 느낌입니다. 구형은 고속으로 갈수록 네 바퀴의 그립이 흐려지는 느낌이 강했었는데 신형은 어느 정도 바닥에 붙은 듯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서스펜션의 움직임도 한결 안정적인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요컨대 고속에서 차체가 떠올라 스프링이 쫙 펼쳐진 다음, 댐퍼가 이를 다시금 오므리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국산차 평균보다 훨씬 빨랐거든요. 독일차를 웃도는 수준의 고속안정성은 아니지만, 그와 견줄 만한 실력임은 틀림없었습니다.


제네시스


제가 2세대 제네시스를 만난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출시 직후인 2013년 겨울에 제네시스와 라이벌들의 비교시승을 진행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당시 이른바 독일 3사 차량은 물론 일본과 미국의 E세그먼트 차들 총 7대를 한 자리에서 번갈아 타보았었는데, 그때도 이번 시승처럼 고작 한 번의 세대교체만으로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는 걸 느꼈던 바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제네시스는 라이벌로 통하는 차들과 비교하면 그 역사가 무척 짧은 모델입니다. ‘다이내믹 럭셔리’라는 슬로건을 선언하고 난 뒤 고작 한 번의 모델 체인지를 거쳤을 뿐이니까요. 그럼에도 현재의 수준에 이르고 있는 건 앞으로의 모습을 더욱 긍정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지속적인 세대교체를 거쳐 진화를 거듭할 제네시스. 다시금 훌쩍 성장해서 독일 라이벌을 가볍게 꺾을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현재까지의 흐름으로 짐작해 보건대, 그럴 가능성은 충분해 보입니다.



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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