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I 이종철(월간 w.e.b. 편집장)



자동차 디자이너가 만든 과거, 현재, 미래

[자동차 디자이너가 만든 과거, 현재, 미래]


우리 주변의 모든 제품에는 디자인이 가미되어 있습니다. 디자인은 소비자에게 강렬한 첫인상이자, 사용하거나 두고 볼수록 편리함과 익숙함으로 그 진가를 드러냅니다. 패션, 건축, 그래픽 등 모든 영역에서도 디자이너의 존재감은 상당한 편인데요. 디자이너들은 기술적 이슈를 해결함과 동시에 소재의 특성, 미려한 외관까지 모두 신경 써야 합니다. 자동차 디자이너의 경우, 트렌드나 생산성을 고려하면서 운전자의 안전까지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도의 전문 지식이 요구되는 분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자동차 산업 디자이너들은 성실성과 동시에 혁신성으로 자동차 발전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역사를 디자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동차 디자인의 시작은 유럽이었지만 혁신은 미국이었지요.


할리우드가 사랑한 자동차, 듀센버그

[할리우드가 사랑한 자동차, 듀센버그(출처: Jack Snell)]



할리우드의 자동차 듀센버그


최초의 자동차는 17세기에 발명됐지만, 현재 자동차의 기반인 가솔린 내연기관 자동차는 1800년대 후반에 독일에서 발명됐습니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 미국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자동차는 황금기를 맞게 됩니다. 이때 자동차 디자인을 주도한 것이 미국의 듀센버그(Duesenberg) 형제였죠. 이들은 디자이너인 동시에 기술자이기도 했습니다. 듀센버그 형제는 마차를 기본으로 하는 유럽 차에 권총과도 같은 강렬한 디자인을 도입했습니다. 신흥 시장이자 점차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고 있었던 미국에서 듀센버그의 차는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클라크 게이블, 게리 쿠퍼, 그레타 가르보, 메이 웨스트 등은 모두 듀센버그 차를 몰았고, 스페인,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등 유럽의 왕족들이나 미국의 사업가들도 듀센버그를 품위의 상징으로 생각했습니다. 다만 당시의 미국 차 디자인은 여전히 마차의 디자인을 모티브로 하고 있었는데요. 이는 또 다른 미국 디자이너 할리 얼에 의해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자동차 디자인 센터의 라인드로잉 스케치

[현대자동차 디자인 센터의 라인드로잉 스케치]



자동차 디자인의 방법론을 세운 할리 얼


할리 얼(Harley J. Earl)은 자동차 디자인의 선구자였습니다. 외관을 만드는 것만이 디자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할리 얼은 할리우드에서 태어나, 자동차 보디 제작 공장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유명 배우들의 차를 디자인하기도 하며 자연스레 자동차 디자인 경력을 쌓았는데요. 이후 미국의 한 자동차 회사에 1927년 입사한 할리 얼은 처녀작 라 살르(La Salle)를 5만 대 이상 판매하며 스타 디자이너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후 1937년, 회사의 첫 번째 디자인 책임자가 된 얼은 자동차 외관의 선과 형태를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음영 없이 펜으로만 그리는 라인드로잉 방식을 도입했고, 이 디자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클레이 모델 제작 방식까지 도입했습니다. 이 방식은 현재에도 쓰이는 보편적인 것이 됐지만,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방법이었죠.


투싼 제작 공정 중 클레이 모델 제작 과정

[투싼 제작 공정 중 클레이 모델 제작 과정]


그와 디자인팀은 매년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으며 1938년, 세계 최초의 콘셉트 카 뷰익 Y Job으로 세계 최고의 스타에 이르게 됩니다. 차의 이름의 Y인 이유는 통상적으로 실험적인 자동차에 ‘next’라는 의미의 X를 쓰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X가 아닌 완전히 다른 카테고리, Y로 자동차의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콘셉트 카를 자주 선보이는 마케팅적 역량을 보이기도 했죠. 얼은 이후 1948년, 1950년대 미국 고급 차를 상징하는 테일핀 자동차를 처음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굉장한 주행속도를 가진 고급차’를 상징하는 테일핀은 올드카 매니아에게 아직까지도 사랑받는 디자인 방식인데요. 자동차 뒤쪽 좌우에 비행기 꼬리 부분과 같은 날개 모양을 세운 형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계 최초의 콘셉트 카 Y-Job

[세계 최초의 콘셉트 카 Y-Job]


그렇다면 그동안 유럽에서는 어떤 자동차 디자인 흐름이 있었을까요? 유럽에서는 같은 시기, 피닌파리나 디자인 가문이 등장하며 자동차의 역사를 바꿔 놓습니다.



이탈리안 슈퍼카의 원형을 디자인한 피닌파리나 가문


1930년 설립된 피닌파리나는 창업자이자 초대 회장인 바티스타 피닌파리나(Battista Pininfarina), 아들 세르조 피닌파리나(Sergio Pininfarina), 손자 파올로 피닌파리나(Paolo Pininfarina)가 3세대에 걸쳐 이끄는 디자인 회사입니다. 그들은 포드로 대변되는 전형적인 마차 디자인에서 벗어나, 현재의 우아함과 유려함을 상징하는 자동차 디자인을 선보였죠. 주로 공기역학적인 디자인을 도입해 직선보다 곡선, 힘보다는 균형 잡힌 비례를 선보여 유럽 자동차 디자인 시장을 선도했습니다. 오늘날의 이탈리아 슈퍼카의 원형인 셈이죠. 아들인 세르조 역시 1960년대 이탈리아 슈퍼카 브랜드들과 파트너십을 계약하며 전설의 명차들을 남기곤 했습니다.

현재 피닌파리나 가문은 3대째인 파올로 피닌피리나에 이르러서는, 슈퍼카의 유려한 곡선을 활용해 건축물을 디자인하기도 했고, 자동차 금속 느낌을 살려 랩톱 등 ‘제품 디자인’ 영역에도 ‘피닌파리나’ 스타일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피닌파리나 스타일의 슈퍼카 디자인을 응용한 건축 프로젝트 페라 콘도

[피닌파리나 스타일의 슈퍼카 디자인을 응용한 건축 프로젝트 페라 콘도]


그런데 할리 얼이나 피닌파리나 가문의 디자인은 주로 고급 차에 치중하고 있죠. 혁신적인 차를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큰 비용이 들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사람들이 애용하는 차는 ‘슈퍼 노멀’ 아반떼 같은 준중형 또는 소형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소형차 디자인의 혁신은 어디서부터 일어난 것일까요.



소형차 디자인의 혁명가, 알렉 이시고니스


1957년 한 영국 자동차 회사의 레오나드 로드(Leonard Lord)는 디자이너 알렉 이시고니스(Alec Issigonis)에게 ‘미니어처’와 같이 작은 크기의 차량 개발을 제안했습니다. 이에 알렉 이시고니스는 ‘작은 차체, 넓은 실내(small outside, bigger inside)’를 골조로 전륜구동, 가로배치 직렬엔진 탑재 등을 기본으로 오스틴 세븐(Austin Seven)과 모리스 미니 마이너(Morris Mini-Minor)를 출시했습니다. 지금은 그 후세대의 차를 흔히 볼 수 있는 이 차는, 3,050mm의 작은 크기에도 어른 네 명과 그들의 짐을 충분히 실을 공간을 확보했고, 4개의 휠 모두에 독립된 서스펜션을 탑재했으며, 경제성의 상징인 전륜 구동 방식을 최초로 채택했죠. 이외에도 엔진과 기어박스를 콤팩트한 단일 구조로 장착하는 등 오늘날의 자동차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심지어 소형차의 경제성까지 영향 줄 정도였죠. 이 차는 이후 ‘모두를 위한 차’로 새로 디자인되어 많은 영국인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시 트렌드가 되어 귀족 등 상류층을 포함, 패션 디자이너인 폴 스미스와 메리 퀀트, 음악가인 비틀즈나 에릭 클랩튼 그리고 데이빗 보위, 심지어는 여왕에까지 사랑을 받았습니다. 소형의 강점인 경제성을 선보이는 동시에 소형차 디자인의 가치를 새로 발굴해낸 셈입니다.


공간을 혁신한 오스틴 세븐의 설계

[공간을 혁신한 오스틴 세븐의 설계]


할리 얼, 피닌파리나, 아시고니스의 디자인은 60년대 이후 미니멀리즘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줬는데요. 이후 자동차 디자인은 날카로움을 강조하는 엣지형으로 점차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크리스 뱅글 등의 스타 디자이너가 등장하기도 했죠.

그렇다면 한국차의 디자인 역사는 언제가 시작일까요? 사람마다 생각하는 시기나 그 역사를 대표하는 차가 다 같을 수 없겠죠. 가까운 일본이나 외국의 디자인과 차별화된 한국차 디자인을 따진다면 피터 슈라이어가 한국에 재임하면서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한국차 디자인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한국차 디자인]



자동차의 코리안룩을 만들어낸 장본인 피터 슈라이어


피터 슈라이어는 독일인 자동차 디자이너입니다. 아우디에서 인턴을 시작한 피터 슈라이어는 자동차 전문 매체인 카 디자인 뉴스에서 "근래 가장 영향력 있는 자동차 디자인의 하나"라고 설명한 아우디 TT를 디자인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는 폭스바겐과 기아자동차를 거쳐 현재 현대자동차의 최고 디자인 책임자(Chief Design Officer)를 역임하고 있습니다.

피터 슈라이어가 한국에 온 시기인 2006년, 피터 슈라이어는 “과거, 기아차는 매우 평범했다. 당신이 도로에서 기아자동차를 봤을 때, 그 차가 한국차인지 아니면 일본 차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며 한국 자동차만의 특성을 살린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기아자동차의 패밀리룩이었죠.


피터 슈라이어 CDO 재임 후 더 단단하고 부드러워진 쏘나타 디자인

[피터 슈라이어 CDO 재임 후 더 단단하고 부드러워진 쏘나타 디자인]


이는 현대기아자동차 CDO를 역임하기 시작한 2013년, 현대자동차 특성에도 잘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기아자동차와는 다르게 피터 슈라이어는 현대자동차에서는 ‘플루이딕 스컬프처’를 강조했는데요. 부드럽고 역동적인 동시에 커다란 헤드램프에서 특유의 강렬함을, 라디에이터 그릴에서 특유의 날카로움을 선보이는 통합 디자인 룩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유럽 차 혹은 일본 차로도 오해받을 수 있는 디자인을 한국적인 부드러움과 날렵함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피터 슈라이어 부임 후 한국차 디자인은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한국 자동차의 디자인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셈입니다. 부드럽고 단단하고 강렬한 룩을 통해 대중 차도 고급 차 수준의 브랜드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국산 차의 새로운 매력이 됐습니다. 동시에 세계 최고급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엔진, 친환경 연료 엔진 등이 동시 발전하며 국산 차는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차량이 됐습니다.


슈퍼카 못지않은 디자인으로 새로 태어난 슈퍼노멀 아반떼

[슈퍼카 못지않은 디자인으로 새로 태어난 슈퍼노멀 아반떼]


의식주를 차지하는 상품 중 가장 크고 고가이며 동시에 움직이는 유일한 것은 자동차입니다. 자동차에 디자인된 외관과 기술 모두 트렌드에 민감합니다. 그래서 자동차 디자이너는 그 시대의 생활상을 가장 생생하게 반영하고 혁신적인 디자인과 디자이너를 통해 그 나라의 품격과 역동성이 전과 다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국산 차 디자이너가 만들어갈 역사는, 우리나라 산업을 대표하는 얼굴이며 에너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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