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상현(자동차 저널리스트)



현대자동차 라인업


자동차의 급을 가늠할 때 가장 직관적인 지표가 될 만한 건 무엇일까요? 아마 대부분 사람들은 엔진의 크기로 통하는 ‘배기량’을 떠올릴 것입니다. 아반떼는 1.6L급, 쏘나타는 2.0L급, 그랜저는 2,4~3.0L급으로 확연하게 구분되는 까닭이죠. 으레 아반떼에는 1,600cc 엔진이 들어가고 쏘나타에는 2,000cc 엔진이 올라가야 구색이 맞아 보이잖습니까. 이게 그동안 우리에게 박힌 일종의 고정관념이라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죠.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배기량이라는 지표로는 차의 급을 규정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지요. 이에 대한 이유로 꼽히는 건 바로 ‘엔진 다운사이징’입니다.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큰 차에 자그마한 엔진을 얹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얘기죠. 극단적인 예로 미국의 한 브랜드는 유럽 법인에서 파는 중형 세단에 3기통의 1.0L 엔진을 얹었습니다. 쏘나타에 경차 크기의 엔진을 넣어준 격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유럽의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제네시스 EQ900 정도의 기함급 자동차에 2.0~2.2L 크기의 엔진을 얹기도 했습니다. 충격적이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게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흐름’이거든요. 직설하면 국내 소비자들이 이 같은 엔진 다운사이징 트렌드를 제대로 바라보고 알아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쏘나타 1.6터보 측면


물론 엔진 크기를 줄이면 힘이 부족해져 차가 잘 달리지 못할 것이 자명합니다. 그럼 운전자는 답답하고 짜증이 날 거고, 결국 가속 페달을 연신 밟아댈 테니 연비는 나빠지겠지요. 그래서 메이커는 작은 엔진을 얹는 대신 파워를 올려주기로 합니다. 힘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터보차저를 즐겨 씁니다. 공기를 강제로 불어넣어 출력을 끌어올리는 거죠. 터보차저가 붙으면 엔진 파워가 올라가는 이유를 아래 링크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엔진을 강력하게 만드는 기술, 터보차저에 관한 A to Z(1) 

엔진을 강력하게 만드는 기술, 터보차저에 관한 A to Z(2) 


이렇게 터보가 붙은 1.0L 엔진은 기존 2.0L 엔진 수준의 파워를 갖게 되어 중형차를 기존처럼 잘 달리게 합니다. 2.0L 터보 엔진은 기존 3.0L 엔진을 뛰어넘는 파워를 품어 기함급 자동차를 부족함 없이 발진시키지요. 이론적으로는 연비도 좋아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작은 엔진을 얹고도 성능과 효율 양쪽 모두에서 장점을 누리게 되는데요. 다운사이징이 확대되고 세상이 변함에 따라, 우리는 결국 차의 급을 배기량으로써 가늠하기 어려워졌다고 느낄 겁니다.



쏘나타가 꼭 2,000cc여야 할까요?


현대자동차도 이러한 엔진 다운사이징 트렌드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예가 바로 7세대 쏘나타(LF)입니다. 쏘나타는 전통적인 자연흡기 2.0L 가솔린을 시작으로 2.0 LPi, 1.7 디젤, HEV와 PHEV 버전을 갖추었고 6세대 시절 도입된 2.0L 터보도 있습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1.6L 터보 엔진이 더해졌습니다. 쏘나타에 정말로 아반떼 크기의 엔진이 올라가게 된 겁니다. 보수적인 쏘나타 소비자 입장에서는 ‘와우’할 만하죠.


쏘나타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새로운 2016 쏘나타, 그리고 1.6 터보와 디젤 


감마 1.6GDi엔진


1.6 터보 모델의 스펙 시트를 살펴보면 주력인 2.0L 가솔린보다 모든 면에서 우세합니다. 우선 최고출력이 12마력 높은 180마력이고 27.0kg•m의 최대토크도 6.5kg•m 강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발생 범위가 1,500rpm~4,500rpm으로 무척 넓습니다. 연비도 역시 더 좋습니다. 17인치 휠 적용 모델 기준 2.0 자연흡기형은 L당 12.6km인데 반해 1.6 터보는 13.1km/L이거든요. 

하지만 1.6L 엔진의 쏘나타가 출시(2015년 7월)된 이후 2015년 11월까지의 판매량은 고작 1,216대. 성격이 달라 수평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같은 시기부터 판매에 돌입한 1.7 디젤이 3,826대 팔린 걸 생각하면 예상보다 인기가 덜한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엔진 다운사이징 된 자동차, 쏘나타 1.6 터보에 대해 예찬하려 합니다. 무작정 좋다고 하는 게 아니라 논리적이고 실질적인 접근으로요.



엔진 다운사이징 자동차, 현실적인 장점과 단점은?


엔진 튜닝


편의상 ‘다운사이징을 거친 모델=터보차저 엔진의 자동차’라는 전제를 깔고 얘기하겠습니다. 터보가 달린 자동차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파워’지요. 만약 쏘나타에 터보가 빠진 자연흡기형 감마 엔진을 얹었다면 최고출력이 132마력이라서 힘이 부족했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 터보가 붙으면서 180마력으로 껑충 오른 거죠. 180마력이면 과거 포트분사식 쎄타 2.4L 엔진의 최고출력과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 아반떼 사이즈의 엔진을 얹고 쏘나타 2.4처럼 달리게 해주다니, 정말이지 매력적이지 않나요?


쏘나타 1.6터보 정면


게다가 쏘나타의 1.6 터보 모델은 7단 DCT가 탑재되어 있어 2.0L 자연흡기 모델의 일반적인(토크컨버터식) 6단 AT보다 효율 면에서 우월합니다. 운전의 재미와 변속 속도 면에서도 우수하지요. 이에 따른 결과는 실제 달리기 성능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해외 쪽 자료에 따르면 2.0 자연흡기형의 0→100km/h 가속에 걸리는 시간은 9~10초인 반면, 1.6 터보형은 7초대를 기록해 성능 측면에서의 ‘선긋기’가 확실한 듯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공인연비와 실제 연비도 더 좋습니다. 사실 터보차저가 팽팽 돌며 가속할 때는 2.0L 자연흡기 모델보다 1.6 터보가 오히려 기름을 많이 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주행환경, 특히 항속 주행할 때는 400cc의 차이만큼 1.6 터보형이 기름을 덜 먹게 됩니다. 힘을 쓸 땐 터빈을 돌려서 큰 파워를 내고 그렇지 않을 땐 차분하게 저배기량 특유의 효율을 누리는 것. 이게 바로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이 효율을 뽑아내는 핵심 방법입니다.


터보 GDi엔진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자연흡기형보다 구조가 복잡해 관리해주어야 할 부품이 함께 늘게 된다는 것. 달아야 할 부품이 늘고 그에 따른 연구개발비가 투입되다 보니 결국 차량의 가격 상승을 수반한다는 거죠. 하지만 국내에서만큼은 어느 정도 상쇄가 가능합니다. 자동차세(보유세)가 엔진 배기량대로 부과되는 까닭이죠. 가령 쏘나타 2.0의 보유세는 연간 약 52만원인데 반해 1.6은 약 29만원으로 20만원 넘는 차이가 발생합니다. 과세 기준이 1,600cc 이하는 cc당 140원, 그 이상은 200원이거든요. 결국, 쏘나타를 타면서 세금은 아반떼만큼 내면 된다는 얘기입니다. 


한편 자동차 마니아 입장에서의 단점은 ‘감성’이 아닐까 합니다. 파워가 자연흡기 엔진보다 강한 건 맞는데 출력이 나오는 모습이 선형적이지 않아서 주행감이 이질적이거든요. 요컨대 자연흡기 엔진은 엔진 회전수가 높아질수록 그에 비례해 차가 빨라지지만, 터보 엔진은 중간 정도의 회전영역에서 차가 ‘훅~’하고 나가는 느낌이 있어요. 최근에는 많이 없어진 편이지만 여전히 미세한 지연 현상(터보랙)도 느낄 수 있지요. 물론 이러한 터보차 특유의 느낌을 선호하는 이도 많으므로 ‘취향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결국, 감성적인 부분들이 터보 엔진 자동차의 유일한 허들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터보차의 자료를 보면 출력과 함께 ‘자연흡기 수준의 반응성’을 강조하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1,000cc의 아반떼와 1,600cc의 그랜저가 나오게 될까?


터보가 달린 1.6L 쏘나타는 장점이 많은 자동차입니다. 이 차를 두고 굳이 2.0L의 자연흡기 모델을 살 만한 동기가 없다고 여겨질 정도로요. 그런데도 왜 많이 팔리지 않는 걸까요? 앞서 지적한 감성적인 문제로 대변되는 자연흡기 엔진에 대한 향수 때문일까요? 아니면 자동차 전문가나 느낄 법한 미세한 터보랙 때문일까요?


쏘나타 1.6터보 블루


개인적으로는 이에 대한 이유를 ‘가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1,600cc의 쏘나타가 2,000cc의 쏘나타보다 비싸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거 같아요. 으레 배기량이 클수록 비싸야 한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실제로 일부 댓글에서도 ‘왜 쏘나타 1.6 터보가 쏘나타 2.0보다 비싸냐’는 의견이 있는 걸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는 서두에 언급했던 ‘배기량으로 차급을 규정하는 오류’와 비슷한 착각입니다. 배기량이 작다고 해서 값이 저렴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고 이제는 그 차가 주는 전체적인 가치를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어쨌든 세상은 변하고 있고, 자동차 업계도 변하고 있으며, 자동차 업계 변화의 중심에는 엔진 다운사이징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다운사이징 모델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는 건 분명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쏘나타 1.6터보 후면


이를 방증하는 모델이 얼마 전 등장한 제네시스 EQ900입니다. EQ900은 3.8L 모델이 엔트리 라인업을 맡고 있고 그 바로 위에서 3.3L 트윈 터보 모델이 꼭짓점인 5.0L 모델과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하지요. 하지만 EQ900의 경우는 쏘나타 때와 달리 3.3L 모델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이 적다고 합니다. 완전한 신차인 까닭도 있겠지만, 쏘나타 터보로부터 본격화된 엔진 다운사이징 흐름에 어느덧 소비자들이 익숙해진 탓도 큰 것 같지 않나요?


국내 환경을 고려한 새로운 엔진 그리고 R&H, 제네시스 EQ900 


따라서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나면 1,000cc 터보 엔진을 얹은 아반떼와 1,600cc 터보 엔진의 그랜저가 도로에 가득할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말만 들어도 어색한 이 조합이, 언젠가는 분명 당연하게 생각될 거예요. 따라서 우리는 그저 변화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즐길 준비만 하면 됩니다. 터보화를 이뤄 진보한 다운사이징 엔진을 즐길 준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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