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우성 (GQ KOREA 기자)


지난가을 얘깁니다. 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현장에 있었어요. 비가 많이 내렸던 오후에, 그 거대한 전시장을 하나하나 둘러보던 중이었죠. 온종일 전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사실 좀 무감각해지게 됩니다. 평소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던 브랜드나 의외로 아주 멋지게 꾸며놓은 곳이 아니라면 그냥 스쳐 가듯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네시스 컨셉트


하지만 이 차 앞에서는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주 유려했거든요. 사실 브랜드를 확인한 건 멈춰선 후였습니다. 거기가 현대자동차 부스라는 것도 그때 알았죠. 그러니까, 이 차를 보기 위해 현대자동차 부스를 찾아갔던 게 아니라 시선을 거둘 수 없었던 그 차가 마침 현대자동차의 콘셉트카였던 겁니다. 이름은 비전 G 콘셉트. 과연 멋진 비율과 디테일을 과시하면서, 그 이름대로 현대자동차의 어떤 미래를 제시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제네시스 컨셉트 후면 1


뒷모습 한 번 보시죠. 어떠세요? 이럴 땐 사실 별말이 필요 없습니다. 누군가는 이 뒷모습을 보고 선이 너무 많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담백하다’고는 할 수 없는 뒷모습이라 하더라도 어떤 말을 확실하게 전하고 있어요. 저는 어떤 미학적 완성도에 앞서 분명한 패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차가 햇빛 아래 서 있을 땐 저 화려한 선과 면이 더 돋보일 거라는 상상도 했습니다. 자동차의 가치란 고요한 스튜디오나 전시장 안에서는 가늠할 수 없는 면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제네시스 컨셉트 후면 2


빛을 이렇게 달리하면, 제가 방금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좀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겠죠? 운전석 쪽으로 서쪽으로 떨어지는 햇빛을 받으면서 달리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개인적으로는 오후 5시~6시쯤 강변북로 서쪽으로 달릴 때, 비슷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숨겨져 있던 선과 면, 굴곡과 직선이 다 드러나죠. 미처 몰랐던 표정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할 겁니다. 현대자동차는 앞으로의 디자인에 한껏 활용할 수많은 단서를 이 한 대의 차에 모조리 녹여냈는지도 모릅니다.


제네시스 컨셉트 측면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 옆모습의 비례였습니다. 거대한 차체와 럭셔리를 그대로 유지한 채, 분명히 세단이어야 마땅한 형식을 거의 쿠페에 가깝게 다시 그렸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쿠페는 아니고, 어쩌면 그 중간에서 가까스로 균형을 찾은 것처럼 말이죠. 이 차를 가만히 보면서 어떤 긴장감을 느꼈다면 바로 그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 옆모습의 오묘함에서 말이죠. 역동적이지만 품위를 잃지 않았고, 자칫 빠질 수 있는 안정감의 함정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제네시스 스케치


이제 바로 위에 있는 렌더링 이미지와 그 위의 비전 G 콘셉트의 이미지를 비교해보세요. 거의 비슷하게 보일까요? 아니면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시겠어요? 말씀드렸던 쿠페와 세단 사이의 균형은 어쩐지 이 이미지가 더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선과 곡선도 조금은 정리된 것 같은 느낌이고, 지붕의 선도 더 도톰합니다. 여전히 고급스러운 가운데, G 콘셉트 쪽이 조금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확실한 느낌이 있어요.



자, 이 디자인은 어떠세요? 제네시스 EQ900입니다. 위의 이미지는 EQ900의 렌더링 이미지였어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전시돼 있었던 비전 G 콘셉트에서 시작해, 이제 성공적으로 제각각 주인을 찾아가기 시작하는 EQ900의 렌더링 이미지를 거쳐 이제 완벽하게 현실적인 모습까지 보고 계십니다.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를까요? EQ900을 비전 G 콘셉트의 양산차 버전이라고 잘라 말해도 될까요?


컨셉트와 양산차


적어도 이 뒷모습을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후미등을 보세요. 양산에 대한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그린 후미등과 양산차로서의 균형을 찾은 후미등. 디자인의 단서는 그대로 이어가면서 EQ900의 출시와 함께 단종된 현대자동차의 기함, 에쿠스와의 연결고리도 되어주는 디자인이에요. 차체의 가장 아랫부분을 감싸주는 선과 두 개의 배기구 주변도 한 번 보세요. 콘셉트카에서 구현하고 싶었던 것과 양산차가 선택한 균형. 위가 EQ900, 아래가 비전 G 콘셉트입니다.


더불어 콘셉트카에서 다소 복잡해 보였던 선도 EQ900 차체에서는 현대자동차가 새로 출시하는 기함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새롭고, 또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혁신과 익숙함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내놓을 수도 없고, 자칫 잘못하면 진부해지기 십상이니까요.


컨셉트와 아반테


이제 이 두 장의 사진을 놓고 살펴볼까요? 이제 비전 G 콘셉트는 알아보시겠죠? 위가 비전 G 콘셉트, 아래는 2016년형 아반떼AD입니다. 많이 닮았죠? 전조등과 라디에이터 그릴의 궁합, 공기흡입구의 라인은 EQ900보다 아반떼AD와 더 많이 닮아있습니다. 비전 G 콘셉트에서 느꼈던 역동성과 날카로움이 아반떼 AD에도 그대로 이식돼 있어요. 아주 날렵해 보입니다. 


아반떼AD를 도로에서 만나면 유심히 한 번 보세요.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부분이 아주 공격적입니다. 아주 낮은 자세로 웅크린 채 곧 뛰쳐나갈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데 성공했어요. ‘곧 뛰쳐나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건, 전 세계 자동차 디자이너의 숙명일 겁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역동적인 느낌을 줘야 하니까요. 아반떼AD는 안정적인 준중형 세단이면서도 그 느낌을 성취해 냈습니다.


컨셉트와 아반테 측면


이렇게 보면 어떠세요? 아반떼AD는 확실히 보닛 쪽이 낮아 보이죠? 트렁크 쪽은 도톰하고 앞쪽은 낮아서 더 날쌘 이미지를 줍니다. 한편 도톰한 뒷모습은 안정감을 높였고요. 앞유리를 유려한 각도로 기울이면서도 앞좌석과 뒷좌석의 헤드룸 공간을 확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을 겁니다. 이 경우는 정면에서 달려오는 모습을 봤을 때가 특히 좋아요. 아주 적극적인 성격으로 보이거든요. 


비전 G 콘셉트의 옆모습과 비교해보면 또 어떻습니까? 아반떼AD 역시 지붕에서 트렁크로 이어지는 선의 각도를 완만하게 유지하면서 쿠페 같은 느낌을 주고 있어요. 따라서 전통적으로 트렁크가 차지했던 지분을 줄였고, 그 흐름 그대로 날렵한 리어 스포일러까지 사뿐하게 이어집니다.


제네시스 컨셉트


콘셉트카가 흥미로운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딱 공개되는 순간의 어떤 감상과 평가는 물론, 그 이후에 이 한 대의 차에 적용된 어떤 요소가 곧 출시할 양산차로 이어질지를 예상하고 가늠해볼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양산 이후에는 지금처럼, 두 개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아, 여기가 이렇게 됐구나’, ‘그렇다면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걸까?’하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기회가 될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식으로 한 대의 자동차를 읽어내는 감각을 점점 더 벼려가는 건 어떨까요? 안정적으로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가는 현대자동차의 디자인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안목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디자이너 루크 동커볼케

[현대자동차그룹에 합류한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루크 동커볼케(Luc Donkerwolke)]


그렇게 안목을 높일수록 위의 이분이 디자인 한 완전히 새로운 현대자동차를 만났을 때, 훨씬 더 즐거운 마음으로 모든 선과 면을, 곡선과 직선의 미학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루크 동커볼케. 아우디, 람보르기니, 벤틀리, 부가티 등을 디자인하며 전 세계 유수의 디자인상을 많이 받은 스타 디자이너입니다. 이제 현대자동차 디자인 센터장으로서 제네시스를 비롯한 현대자동차그룹 디자인의 혁신을 이끌게 됐습니다. 앞으로의 현대자동차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디자이너의 의도와 산업의 관계를 파악하고, 그 의도에 대해 생각하는 즐거움을 소개해드렸는데, 어떠셨나요? 디자인을 이해하고 디자인을 통해 예측하고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야말로 자동차를 즐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출시 차량만큼 콘셉트카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 더 높아지길 바랍니다.


현대자동차,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루크 동커볼케’ 영입  

현대자동차, '2016 한국 올해의 차' 수상  

현대자동차, 글로벌 디자인 경쟁력 인정받아  

신형 아반떼, 스스로에 의한 모던 스컬프처로의 진화  

정중하고 깊이 있는 우아함의 완성, 제네시스 EQ900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