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l 정상현(자동차 저널리스트)

사진 l 최진호(Gooood Studio)



제네시스 EQ900


최고급차가 품는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가장 대표적인 건 역시 ‘상징성’일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원가 부담이 적어 브랜드의 기술력과 디자인을 과시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 되는 게 플래그십 모델이기 때문이죠. 여기서 더 나아가면 각 사의 기함은 ‘국가대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동차 생산국들의 최고급차는 모든 자존심을 건 채 최대한 멋지고, 고급스럽고, 화려하고, 높은 퍼포먼스를 품어 양산되곤 합니다. 간단히 말해 메이커가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 만들어낸 자동차가 바로 최고급차인 것입니다.


에쿠스


현대자동차의 에쿠스는 국산 최고급차의 자존심으로 통하는 차였습니다. 유럽 고급차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후륜구동 방식의 도입, 독자 개발한 8기통 5.0L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얹는 등 스펙만 놓고 보면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F세그먼트(전장 5m 이상) 모델과 견줄 수 있었지요. 하지만 실제 타보면 아쉬움이 느껴졌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디자인과 공간면에서는 뒤지지 않았으나 성능과 장비는 기술의 격차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어요. 특히 성능면에서 그랬지요. 하체는 필요 이상으로 출렁거렸고 가속력도 페이퍼상의 수치에 비해 아쉬움을 자아내곤 했습니다.


EQ900 엠블램


그랬던 에쿠스가 혁신을 이룬 끝에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내외장을 일신한 건 물론이고 새로운 다운사이징 파워트레인과 각종 첨단 장비까지 가득 품었습니다. 가혹하기로 소문난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성능을 담금질했습니다. 이름은 에쿠스(EQUUS)를 상징하는 EQ와 최고급을 의미하는 9를 따서 EQ900(이큐 나인헌드레드)로 바꾸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예 브랜드까지 변경하였습니다. 고급차의 상징이었던 제네시스의 차명을 브랜드화, 대중적인 차들과 ‘선 긋기’를 한 겁니다. 그래서 이 차는 현대자동차 EQ900가 아니라 제네시스 EQ900이라는 이름으로, 완전히 새로운 차로서 우리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급차였던 현대 에쿠스의 자리를 제네시스 EQ900가 꿰차게 된 것입니다.


3.3 H TRAC 앰블램


이번에 시승한 차는 제네시스 EQ900 라인업 중 트윈 터보 엔진으로 퍼포먼스를 강조한 3.3T 모델. 그중에서도 가장 최고급형인 프레스티지 트림입니다. 여기에 퍼스트 클래스 VIP 시트 옵션까지 탑재, 결과적으로 차량 가격만 1억1,195만원(2016년 2월 기준)에 이르는 ‘F세그먼트 최고급차’입니다. 이는 국산차의 범주 안에서 입이 쩍 벌어질 만한 수준인 걸 부정할 수 없을 터. 하지만 동등한 장비 수준의 독일계 라이벌보다 3,000만~4,000만원 저렴한 가격이라는 것 또한 자명합니다.


제네시스 EQ900, 기술을 넘어선 인간 중심의 진보  


EQ900 전면부


에쿠스가 권위적이되 곡선 기조의 여성성을 품었다면 EQ900는 그와 반대의 디자인 방향성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직선 위주의 디자인으로 남성미를 강조하되 세련미까지 담아냈지요. 얼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그릴이 콤팩트해진 것입니다. 제네시스는 이걸 크레스트 그릴이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현행 현대 제네시스(DH)와의 차별화가 덜한 점이 살짝 아쉽지만 과하다 싶었던 선대 모델보다는 이쪽이 더 나아 보입니다.


EQ900 헤드라이트


부차적인 변화는 큼지막한 헤드램프가 한층 슬림하고 날카롭게 바뀐 것. 굽이치던 옆면의 캐릭터라인도 단순화되었고 윈도 라인도 자를 대고 그린 듯 단출해졌습니다. 리어 램프도 마찬가지. 기존 에쿠스의 모습을 계승하되 직선화를 통해 한층 세련되고 단정해진 느낌입니다. 사실 이런 변화는 보수적인 최고급차 수요층이 거부할 수도 있겠지만, 시장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긍정적입니다. 한마디로 젊어졌기 때문이죠. 에쿠스가 장년층만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이었다면 EQ900는 중년과 장년층 모두를 아우르는 느낌입니다.


EQ900 측면부


이번 시승기를 통해 디자인 쪽에서 빼놓지 않고 칭찬해주고 싶은 건 풍채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5m를 훌쩍 넘기는 길이(5,205mm)를 갖고 있음에도 비례감이 아주 좋습니다. 특히 뒷자리 공간을 위해 뒷문을 길쭉하게 만들었지만 이게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건 그야말로 디자인의 승리라고 여겨집니다. 물론 다른 대중차 옆에 서 있을 때는 엄청난 덩치를 실감하지만, 단독으로 놓고 보자면 크기를 잊게 할 정도로 안정적인 비례를 자랑한다는 얘기입니다.


정중하고 깊이 있는 우아함의 완성, 제네시스 EQ900 


EQ900 실내 운전석


실내도 단정한 느낌입니다. 수평 형태 대시보드와 4스포크 스티어링 휠이 안정적인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디테일 면에서는 리얼 우드를 쓴 트림과 거대한 12.3인치 모니터, 시프트 바이 와이어화를 이룬 전자식 기어 노브, 금속 질감의 버튼이 최고급차임을 강조하는 느낌입니다. 특히 메탈 윈도 버튼과 곳곳의 가죽 감싸기, 아날로그 시계는 대중차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 다만 센터페시아의 금속성 버튼이 진짜 금속이 아니라 금속 질감의 플라스틱인 점은 급에 맞지 않습니다. 아울러 아날로그 시계의 감성적인 품질감도 차의 품격 대비 살짝 모자란 듯합니다.


클러스터


편의장비는 헤아릴 수 없지만, 꼭 짚어보고 싶은 건 자율주행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바로 ASCC(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와 LKAS(주행 조향 보조 시스템)이죠. 구체적으로 정차 후 출발(3초 이내)까지 자동으로 수행하는 ASCC는 가감속을 스스로 수행하는 역할을 맡고 LKAS는 차선을 감지해 스스로 조향하는 역할을 합니다. 결국 운전자의 발이 하는 일은 ASCC가, 손이 하는 일은 LKAS가 대신함으로써 자율주행이 가능한 거죠. 냉정히 말해 아직은 자율주행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수준에 머물지만, 소프트웨어적 개선이 조금만 더 이뤄진다면 그때는 운전석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을 겁니다.


제네시스 EQ900, 인간 중심의 최첨단 안전 기술  


실내 운전석


그밖에 재미있는 기능 중 하나는 ‘스마트 자세제어 시스템’입니다. 신장과 몸무게 등의 정보를 입력하면 해당 조건에 맞는 운전자세를 추천해주는 것인데, 실제 써보니 정말 이상적인 자세를 구현해내었습니다. 운전석 시트는 등받이 날개 쪽의 조임 수준까지 조절 가능한 22방향 전동 시트. 허벅지부터 머리까지 몸을 완전하게 받치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착좌감이 무척 좋은 게 인상적이라 자세히 알아보니 실제로도 독일 허리 건강협회로부터 최고 수준임을 입증하는 AGR 인증 마크를 획득했다고 합니다.


EQ900 퍼스트 클래스 뒷자석


만족감은 운전할 때보다 뒷좌석에서 더욱 커집니다. 시승차의 퍼스트 클래스 VIP 시트(295만원) 옵션은 타워형 콘솔로써 양쪽 좌석을 완전히 분리하고 있으며 좌우 각 시트를 전동으로 작동, 뒷자리에 탑승할 특별한 분을 모실 준비가 완벽해졌습니다. 아울러 뒷좌석 전용 모니터를 두 개 갖추었고 시트에는 열선 및 통풍 기능을, 좌우 윈도는 자동으로 오르내리는 블라인드까지 적용되었습니다. 


EQ900 퍼스트 클래스 뒷자석


한편 오른쪽 뒷좌석에서 레스트(REST) 버튼을 누르면 동반자석이 앞쪽 끝까지 이동하고 뒷좌석이 항공기 비즈니스 클래스처럼 눕게 되는데 이때의 착좌감은 그야말로 최고의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아리 쪽의 받침대가 나오지 않는 건 소소한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는 향후 추가될 리무진 버전에서 도입될 운명일 테지만요.


퍼스트 클래스의 만족 그대로, 제네시스 EQ90


내부 엔진룸


제네시스 EQ900의 엔진 라인업은 총 세 가지. 선대로부터 넘겨받은 V6 3.8L 직분사 엔진을 시작으로 새로운 V6 3.3L 직분사 트윈 터보, V8 5.0L로 마무리됩니다. 변속기는 전 라인업 공히 8단 자동. 기본형에 해당하는 럭셔리를 제외한 전 트림에서 전자식 사륜구동인 HTRAC이 기본이고 럭셔리의 경우 HTRAC을 옵션으로 선택(245만원)할 수 있습니다. 시승차는 3.3 T-GDi 모델로 새로 출시된 3.3L 트윈 터보형입니다. 일반적인 자연흡기 엔진과 육안상 크기 차이를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실린더 협곡 사이에 두 개의 터보차저를 담았기 때문. 덕분에 보닛을 열면 6기통 터보 엔진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공간의 여유를 두고 있습니다. 


터보 GDi


최고출력은 370마력으로 3.8L 자연흡기형의 315마력보다 오히려 17% 높습니다. 최대토크는 무려 52kg∙m. 이는 V8 5.0L 버전의 53kg∙m을 위협할 지경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막강한 토크를 1,300rpm부터 내뿜어 터보 엔진 특유의 지연 현상에 대한 걱정을 불식시키고 있습니다. 이로써 2,185kg에 이르는 공차중량을 품고 있음에도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오싹할 정도의 가속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고속도로 제한속도의 두 배 정도 영역은 가뿐하게 오르내릴 수 있고 이후에도 출력의 여유가 느껴집니다. 다만 덩치 탓인지 제동력은 살짝 부족한 느낌입니다. 앞뒤에 커다란 디스크 로터와 모노블록 캘리퍼를 달고 있어 제동 계통의 하드웨어적 스펙에는 전혀 아쉬움이 없습니다. 추측하건대 타이어의 종방향 그립이 다소 부족한 게 아닐까 합니다.


EQ900 주행


가속성능보다 더 큰 감동은 승차감입니다. 감히 말하건대 저에게 ‘대한민국 도로 위에서 바퀴 달린 모든 걸 통틀어 가장 좋은 승차감을 내는 차’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EQ900를 지목할 겁니다. 과속방지턱이나 덜컹거리는 요철, 다리 이음매 때문에 발생하는 충격을 실내로 거의 전달하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차체가 온전히 평형을 유지합니다. 예컨대 ‘슈퍼마리오’가 악당을 발로 꾹 하고 밟아 없애듯 요철이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EQ900 전면


승차감에 관한 얘기의 연장으로 완벽에 가까운 소음 차단 능력도 칭찬할 부분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가 그동안 타보았던 그 어떤 F세그먼트 세단보다 정숙성이 우수했습니다. 주행할 때 실내는 그야말로 ‘스트레스 프리’의 공간. 마법의 양탄자, 비단 같은 승차감, 구름 위를 달리는 느낌 등의 그 어떤 수식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최고입니다. 정숙성의 대명사로 통했던 L사의 기함보다 더 훌륭했다고 하면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까요.


EQ900 휠


일상에서의 하체 움직임이 무척 유연함에도 중속 이상의 코너에서 좌우 방향의 기울어짐(롤링)이 적다는 게 인상적입니다. 가변형 댐퍼인 GACS(Genesis Adaptive Control Suspension)가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대목이죠. 하지만 저속의 급한 코너나 연속되는 좌우 움직임에서는 크기와 무게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물리적 한계까지 뛰어넘지는 못한다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주행 모드를 ‘스포츠’에 설정하면 뭉클거렸던 하체가 단번에 뻣뻣해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스마트 또는 노말 모드와 확연히 구분될 정도인데, 이와 같이 변화의 폭을 벌려둔 건 성능에 대한 자신감이 아닐까 합니다.


국내 환경을 고려한 새로운 엔진 그리고 R&H, 제네시스 EQ900 


EQ900 그릴


마지막으로 약간의 쓴소리를 하고자 합니다. 과거의 에쿠스는 세계적인 명차들에게 ‘도전장’을 던진 격이었습니다. 최고급차 만드는 거,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지요. 하지만 이로부터 진화한 제네시스 EQ900는 이제 더는 도전자로서가 아니라 ‘경쟁자’의 위치에서 평가받을 때가 되었습니다. 눈높이를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그중에서도 그들의 기함에 맞춘 채 냉정하게 평가해보자는 거죠.

이런 기준에서 수평비교하자면 EQ900는 ‘연비’를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승하는 동안 시내 6km/L, 고속 9km/L 정도의 수치를 보였기 때문이죠. 만약 변속기의 코스팅 모드, 아이들링 스톱&고 시스템 등이 적용되었다면 최소 5% 이상은 더 좋은 연비를 보였을 텐데 말입니다. 절대적인 수치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2톤 넘는 무게와 370마력의 출력, 상시 사륜구동을 생각하면 오히려 흠 잡을 데 없죠. 쉽게 말해 마치 이런 겁니다. 더 좋은 성적표를 받을 수 있는데 적절히 강약조절을 한 것 같은,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 것이죠.


EQ900 후면부


제네시스 EQ900를 1,000km 가까이 시승하는 동안 아주 좋은 인상이 남았습니다. 주행할 때 외부와 단절된 듯한 특유의 맛에 완전히 중독되어버렸지요. ‘플랫라이드’ 성향의 승차감은 또 어떻고요. 그래서 최고급차 수요층에게 EQ900를 주저하지 않고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효율을 끌어올릴 여지가 있을지언정 여타 평가 항목에서는 라이벌을 따돌리기까지 하니까요.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될 제네시스 EQ900. 이 차에 대한 앞으로의 평가는 어떨까요? 저는 제네시스 EQ900를 응원하는 바입니다. 남보다 조금 더 먼저 경험해본 입장에서 EQ900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고 이번 시승기를 통해 느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저와 같은 경험에서 같은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EQ900는 그만큼 높은 상징성과 가치를 품고 있는 차였으니까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