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ㅣ 황욱익(모터스포츠 칼럼리스트)



나스카


태초의 자동차는 마차보다도 느렸습니다. 그러나 내연 기관이 발달하면서 자동차는 운송 수단을 넘어 기술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자동차 메이커들이 모터스포츠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판매량이 적더라도 레이스에서 우승하면 기술력을 인정받고 판매가격을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외로 자동차 업계에서 판매량으로 자동차 회사를 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불과 1990년대 까지만 해도 모터스포츠에서 몇 번 우승했고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가 자동차의 좋고 나쁨을 나누던 기준이었습니다. 페라리나 맥라렌 같은 회사들은 아예 레이스용 경주차만 만들던 회사였으며, 100년 이상 된 알파 로메오나 마세라티는 자신들의 역사를 논할 때 모터스포츠를 빼놓지 않습니다. 글로벌 톱5에 진입한 현대자동차가 몇 년 전부터 WRC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자동차 메이커 대부분이 모터스포츠를 통해 기술력과 철학을 인정받으려 하고 있지만 그들의 고향이 어디냐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의 모터스포츠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실은 해당 국가의 자동차 문화에 기인하고 있는데 각 국가별로 인기가 많은 모터스포츠를 살펴보면 그 국가의 자동차 문화와 자동차 메이커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모터스포츠는 크게 서킷에서 열리는 온 로드 레이스와 비포장에서 열리는 오프 로드 레이스로 나뉩니다. 또한 엔진의 크기에 따라서 클래스가 구분되기도 하고 개조범위에 따라 다양한 카테고리가 존재합니다. 이번에는 국가별로 어떤 형태의 레이스를 선호하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우선 시작하기 전에 오토크로스와 짐카나, 카트, 타임어택과 같은 기초 모터스포츠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모터스포츠 역사가 길고 저변이 넓은 국가에서 기초 모터스포츠는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탄탄한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그 형태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모터스포츠는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북미 대륙


F1


미국과 캐나다의 모터스포츠 역사는 유럽에 버금갈 정도로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미국 중심의 인디카 시리즈와 나스카 시리즈입니다. 포뮬러(오픈 휠) 레이스인 인디카 시리즈는 영화 ‘드리븐’의 배경으로 유명합니다. 인디카는 겉으로 보기에는 F1과 비슷하지만 예전부터 터보 엔진과 에탄올 연료를 사용했습니다. 경기장 역시 원형인 오벌 경기장에서 열립니다. 좀 더 원초적인 스피드에 접근한 오픈 휠 레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 드라이버로 유명한 다니카 패트릭이 현재 인디카 시리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NASCA


아이스하키, 야구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중의 하나인 나스카는 현재 미국을 포함한 북미 대륙에서 열리는 모터스포츠 이벤트 중에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스톡카라 불리는 경주 전용 레이스카가 참가하는 나스카는 ‘젠틀맨 스타트 유어 엔진(Gentleman start your engine!)’ 이라는 구호로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나스카는 스프린트컵을 비롯해 인디애나폴리스 500마일 레이스, 윈스톤 컵 등 매우 다양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번에 50여 대의 경주차가 출전하며 공인된 상금을 걸고 레이스를 합니다. 나스카에 출전하는 스톡카는 V8 엔진을 장착한 스페이스 프레임 구조 경주차로 모든 팀이 같은 조건의 경주차를 운용합니다. 현재는 포드와 GM, 토요타가 엔진을 공급하고 있는데 어떤 팀이든 같은 엔진을 공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차체의 크기나 높이 등 기술 규정 역시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혹자는 나스카에 대해 원메이크 일색의 재미없는 레이스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미국인들에게 나스카는 레이스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나스카 경기가 열리는 원형 경기장은 어느 위치에서나 경기장 전체를 관람할 수 있으며, 경기장 주변에는 캠핑카를 위한 주차공간이 있을 만큼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편하게 레이스를 즐길 수 있습니다. 미국인들에게 레이스는 단순히 승부를 보기 위한 과정이 아닌 레이스 그 자체가 여가활동인 셈입니다. 참고로 톰 크루즈가 주연했던 ‘폭풍의 질주’는 나스카를 배경으로 남자들의 우정과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영화입니다. 


스톡카


나스카만큼 북미에서 인기 있는 레이스로는 드래그가 있습니다. 드래그는 레이스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이고 단순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400m(쿼터 마일) 직선거리를 누가 빨리 달리느냐로 승부를 가리는 경기입니다. 참가 대수가 많고 길지는 않지만 화끈한 주행을 볼 수 있어 인기가 높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드래그의 기원은 대공황 이후 금주령을 피해 주류를 운반하던 갱들의 고성능 운반차에 있다고 합니다. 단속에 걸리지 않게 강력한 엔진을 장착한 차들이 필요했던 시기가 발전하면서 현재 드래그의 모습으로 발전했습니다.


미국 드레그 레이싱


21세기 북미의 레이스에는 드리프트와 글로벌 랠리 크로스가 등장합니다. 일본에서 시작한 드리프트는 1990년대 미국에 소개되었는데 1km 이내의 짧은 거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행을 해야 하는 피겨 스케이트와 같은 형태입니다. 현대자동차는 제네시스 쿠페를 투입했으며, 스쿠프 시절부터 현대자동차와 인연이 깊은 레이서 집안인 밀렌 가문의 리즈 밀렌과 함께 출전했었습니다. 리즈 밀렌은 분노의 질주 시리즈와 각종 스턴트 드라이빙으로 유명한 랠리스트 출신 드라이버로 아버지인 로드 밀렌은 현대자동차의 스쿠프로 미국 레이스에서 활약했었습니다.


스턴트 드라이빙


글로벌 랠리 크로스는 4대의 경주차가 일정 코스는 거의 전투적으로 주행하는 경기입니다. 비포장도로 레이스인 랠리의 아스팔트 버전이라고 보면 되는데요. 최근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익스트림 스포츠 리그인 X 게임 시리즈와 함께 열리기도 합니다. 



모터스포츠의 종주국인 유럽 


F1


최초의 레이스는 프랑스에서 열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자동차 메이커들이 모여있는 유럽 대륙은 다양한 형태의 레이스가 공존했는데요. 이중 F1과 WRC는 유럽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레이스입니다. 또한 양산 스포츠카가 출전하는 GT 레이스도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국가별로 열리는 투어링카 레이스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모터스포츠 이벤트 중에 최고봉이라 불리는 F1은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각 메이커가 비교적 느슨한 규정 아래 각자가 가진 최고의 기술을 집약한 경주차를 출전시키기 시작한 F1은 끊임없는 인사사고로 한때 곤혹을 치르기도 했었습니다. 영국을 중심으로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등 유럽 대륙에 기반을 둔 F1은 모터스포츠 역사 그 자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방대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서킷의 터미네이터라 불리는 미하엘 슈마허와 음속의 사나이 아일톤 세나, 서킷의 교수 알랑 프로스트, 불사조 니키 라우다 등 걸출한 선수들을 배출했죠 몇 년 전 개봉한 영화 더 러쉬(The Rush)의 배경이 1970년대 F1입니다. F1은 미국의 인디카에 비해 참가 메이커들의 기술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한다’는 모토인데 F1 드라이버의 연봉은 매년 세계 스포츠 스타 연봉 순위 톱5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경제구조나 산업구조가 상당히 넓으며 영국은 F1을 위한 직업 교육과정이 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모터스포츠


F1이 서킷에서 열리는 모터스포츠 이벤트의 최고봉이라고 하면 WRC는 비포장과 일반도로에서 열리는 최고봉 레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출전하고 있는 것으로 국내에 많이 알려졌습니다. 랠리는 유럽의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에서 열리는 경기인 만큼 대중적인 자동차들이 출전합니다. F1 머신이 첨단을 달리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서킷 전용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랠리 경주차는 말 그대로 어디든 달릴 수 있는 전천후 경주차입니다. 물론 속력은 F1 머신이 빠르지만 유럽인들은 랠리에 대해 더 큰 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좀 더 대중적이고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소형차들이 대거 출전하기 때문입니다. WRC를 비롯해 유럽에서는 다양한 랠리가 열리고 있는데요. 푸조와 시트로엥, 포드, 폭스바겐, 세아트, 스코다 같은 대중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은 큰 개조 없이 랠리에 참가할 수 있는 호몰로게이션 모델(레이스에 출전할 수 있다는 경주용 인증 모델)을 매년 선보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모터스포츠, WRC의 한가운데에 서다! 현대 쉘 월드 랠리 팀


독일 투어링카

[독일의 투어링카 레이스(DTM)]


고성능 양산차가 출전하는 GT 레이스와 투어링카 레이스도 유럽을 대표하는 레이스 중의 하나입니다. 장거리 이동용 자동차를 뜻하는 GT는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초기 레이스의 전통에 따라 고성능 자동차들이 출전합니다. 완전 개조가 가능한 GT1부터 개조범위와 엔진 크기에 따라 GT4까지 등급이 나뉘는 GT 레이스는 F1과 더불어 유럽의 레이스 마니아들을 서킷으로 끌어들이는 일등 공신입니다. 


WTCC

[유럽 투어링카 레이스(WTCC)]


투어링카 레이스는 GT 레이스보다 사이즈가 작고 대중적인 차들이 출전하는 레이스인데 독일의 DTM과 영국의 BTCC가 전통적으로 투어링카의 대표 레이스로 불립니다. 2000년대 중반에는 배기량 2,000cc급 유럽 투어링카 레이스를 통합하는 WTCC가 출범했으며, 현재는 다운사이징 흐름에 따라 1,600cc 직분사 터보 엔진을 사용하는 경주차들이 출전합니다.


프랑스 르망


유럽 하면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로 대표되는 내구 레이스도 빠질 수 없는데요. 르망 24시간 레이스는 원래 독자적으로 열리다 몇 년 전부터는 WEC(세계 내구레이스 선수권)에 포함되었습니다. 르망 24시간 레이스는 F1만큼이나 다양하고 드라마틱한 역사를 갖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하이브리드 엔진을 장착한 프로토 타입 경주차들이 출전해 기술력을 겨루고 있습니다. 토요타와 아우디, 포르쉐가 몇 년째 치열하게 접전을 펼치는 중입니다.



다양한 형태가 혼합된 일본의 모터스포츠 


일본 모터스포츠

일본 드레그


일본의 모터스포츠는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조금 복잡합니다. 기반은 유럽 레이스에 두고 있지만, 독자적인 투어링카 레이스를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슈퍼 GT인데요. 토요타와 렉서스, 혼다, 닛산, 스바루 등 일본 메이커를 비롯해 BMW, 페라리, 메르세데스-벤츠 등 유럽 메이커들이 한판 승부를 펼칩니다. 슈퍼 GT는 출력에 따라 GT300과 GT500 두 개 클래스로 나뉘는데요. 이벤트마다 다른 경기 방식을 채택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슈퍼 GT는 일본 메이커들의 자존심 경쟁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레이스에서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인 혼다와 닛산의 경쟁구도, 후발주자인 렉서스의 추격전, GT300에서는 일본 메이커와 유럽 메이커의 경쟁이 매우 치열합니다. 과거에는 대배기량 V8 엔진이 주를 이뤘으나 최근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하이브리드와 다운사이징 엔진이 속속 선보이고 있습니다.



슈퍼 GT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독자 레이스인 슈퍼 포뮬러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포뮬러에 지속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일본의 모터스포츠 흐름에 따라 F1을 제외한 가장 빠른 포뮬러 리그로 불리기도 합니다. 현재 엔진 공급 업체는 토요타와 혼다 두 곳이며 섀시는 달랄라를 사용합니다. 슈퍼 포뮬러 외에도 일본은 독자적인 포뮬러 레이스를 운영 중인데요 1,200cc급 입문용 포뮬러부터 2,000cc F3급을 비롯해 각 메이커에서 개발한 포뮬러까지 다양한 포뮬러 레이스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레이스가 드리프트입니다. 드리프트는 일본의 자동차 폭주족 문화에서 출발했습니다. 폭주족들이 매일 밤 고갯길을 달리며 실력을 겨루었던 것으로 만화 ‘이니셜 D’를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졌는데요. 그 드리프트를 서킷으로 가져와 거리 폭주족을 양성화시킨 것으로 유명합니다. 드리프트는 일반적인 레이스와 달리 2대의 경주차가 뒷바퀴를 얼마나 멋있게 미끄러트리면서 주행하며, 앞차와 거리를 얼마나 좁히고 추월하느냐, 혹은 뒤쪽에 따라오는 차와 거리를 얼마나 벌리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레이스입니다. 심사위원이 채점하는 방식도 일반적인 레이스와는 다르죠. 현재 드리프트는 종주국인 일본을(D1 그랑프리) 비롯해 미국(포뮬러 D), 유럽(킹 오브 유럽), 아시아(킹 오브 아시아) 등 다양한 형태로 세계 각국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모터스포츠의 모든 것 

[KSF - 더 브릴리언트 모터 페스티벌 2015] 행사 스케치 및 후기 


봄을 맞아 야구, 골프, 육상(마라톤) 등 다양한 스포츠가 예열을 마치고 시즌을 오픈하고 있습니다. 국내 모터스포츠도 마찬가지로 가장 오래된 KSF(KOREA SPEED FESTIVAL), SUPERRACE(스톡카 레이스) 등 다양한 종목의 모터스포츠가 관객을 맞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국내 모터스포츠의 시설 및 부대행사가 더 발전하고 풍부해진 만큼 많은 참여와 관람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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