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I 구 상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


 

[4도어 소형승용차였던 1976년형 포니]


올해로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이었던 포니(Pony)가 등장한 지 40년이 되었습니다. 포니는 현대자동차 최초의 독자 디자인 차량이자 국내 최초의 고유 모델입니다. 포니는 이탈리아의 디자인 전문업체 이탈디자인(ITAL DESIGN)의 설립자이자 20세기 최고의 자동차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조르제토 쥬지아로(Giorgetto Giugiaro; 1938~)에 의해 1974년 2월에 디자인이 완료되었고, 설계와 공장건설 단계 등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 1976년 2월부터이니, 올해로 만 40년이 되는 것입니다. 아마 젊은 분들 중에는 포니를 한 번도 못 보신 분들이 대다수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대한민국 최초, 현대자동차 최초 고유 모델로 회자되고 있는 포니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콘셉트 카로 개발된 포니 쿠페]


조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포니는 그 당시 국제적인 자동차 디자인의 흐름에서도 한 획을 긋는 조형적 특징을 가졌었다고 평가됩니다. 그것은 차체가 전체적으로 간결한 기하학적인 조형요소로써 높은 통일성을 가지면서도, 장식적인 요소가 배제된 추상성(抽象性)이 높은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니의 발매에 앞서서 현대자동차는 포니의 차체 디자인을 주제로 한 콘셉트 카 ‘포니 쿠페’를 이탈리아에서 열린 토리노 모터쇼에 발표합니다. 이 차량은 포니의 기하학적인 디자인조형을 더욱 강조한 모델로 비록 시판되지는 않았지만, 포니의 디자인 특징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포니는 시판 첫해에 우리나라에서 1만 726대가 팔려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습니다, 1978년 12월에는 내수 7만8천8대, 수출 2만4천692대를 달성하는 등 빠른 판매성장을 보였습니다. 물론 2만4천여 대의 수출은 오늘날 현대자동차의 연간 자동차 수출 대수를 감안해 본다면, 1주일 치 수출량도 안 되지만, 그 당시에 개발도상국의 자동차메이커가 자동차를 수출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포니는 이후 1982년에 페이스 리프트(face lift) 모델 포니2가 나오기까지 내수 20만 8천대, 수출 9만 2천대로 최초로 단일 차종 30만대를 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렇듯 포니는 우리나라의 자동차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모델입니다.


 

[포니는 이후에 3도어 해치백 모델도 등장합니다]


포니의 차체 디자인은 전문적인 용어로 설명한다면, 패스트 백(fast back)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트렁크 부분이 뒤 유리창과 동일한 경사면으로 만들어져 빠르게(fast) 흐르는 형태를 가진 뒷부분(back)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트렁크 뚜껑은 뒷유리와 분리된 구조로 되어 있어서 별도로 열렸습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포니는 뒤쪽이 크게 경사진 패스트 백(fast back) 형태이고, 네 개의 문을 가지고 있으며, 승객실과 트렁크 공간이 분리된 3박스(box) 구조, 즉 세단(sedan)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패스트 백 형태의 차들은 객실과 트렁크가 연결된 2박스(box) 구조에, 커다란 테일 게이트(tail gate)가 있는 해치 백(hatch back)구조인데, 포니는 그러한 유형이 아닌, 특이한 구조와 형태였던 것입니다. 물론 포니는 이후에 스테이션 웨곤(station wagon)과 픽업(pick-up), 그리고 1980년 4월에는 3도어 해치백모델도 개발됩니다.



[5도어 해치백으로 나온 포니2]


그리고 1982년에 차체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크게 바꾸고 구조를 개선한 모델로 포니2가 나옵니다. 포니2는 트렁크 뚜껑과 뒷유리가 일체로 되어 있어서 전체가 하나로 열리는 해치백(hatch back) 구조로 디자인되었습니다.


포니는 1976년에 시판되기 시작한 이후, 1982년에 포니2가 나오기까지 몇 번의 연식변경(年式變更, model year)이 있었는데요, 물론 그 변경내용은 방향지시등(方向指示燈)의 렌즈형태나 범퍼의 코너 브래킷(corner bracket)의 형상 등 세부적인 부품의 형상변경이었습니다. 이밖에 앞면의 방향지시등과 차폭등(車幅燈)도 초기의 모델에서는 앞범퍼 아래의 에어댐(air dam)에 달려있던 것이 다음 해에는 앞범퍼로 올라오는 등 몇 가지의 변화가 있었듯. 포니의 디자인적 진화는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의 포니는 사실상 소형 승용차로써가 아니라, ‘자가용’으로써 의미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운전기사를 따로 두고 타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며, 차체의 장식품도 보수적인 이미지로 마무리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차체의 지붕 부분을 검은색 인조 가죽(그 당시에 비닐레자라고 불렀습니다)으로 씌우고 클래식한 이미지의 부챗살 모양의 휠 커버를 씌우는 등의 부가적인 치장으로 포니는 소형 승용차가 아닌, 마치 서구의 고급 승용차와 비슷한 이미지로 장식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차체 지붕을 이처럼 인조가죽을 씌우는 것은 과거 고급 승용차들이 개폐식 지붕을 가진 무개차(無蓋車)였던 것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상 지붕이 열리지 않으면서도 마치 무개차인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내는 장식기법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승용차들이 지붕에 인조가죽을 씌워 장식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처럼 성행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장식을 하면 포니의 이미지는 완전히 변화했습니다. 이처럼 지붕에 인조가죽을 덧대는 작업을 통해서 정말로 소형 승용차답지 않은 품위(?)있는 고급 승용차와 같은 이미지도 풍기게 되었는데요. 포니는 그 당시 한국 사회에서 단순한 소형 승용차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고급승용차처럼 꾸며진 포니의 딜럭스 형 모델]


이제 포니 개발 이후 40년이 흘렀고, 현대자동차를 필두로 하는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업은 세계 5위의 수준으로 발전했습니다. 우리의 독자적인 디자인과 기술로 차량을 개발해 세계 시장에 수출하고 있으며, 1,000cc 배기량의 경승용차에서부터 5,000cc의 대형 고급승용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고유모델 국산 승용차들이 국내외 시장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자동차의 왕국이라 불리는 미국과 자동차의 본고장 유럽에까지 자동차를 수출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차를 생산하기까지도 하는 정도의 괄목상대(刮目相對) 발전을 이룬 것에 여러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1970년대를 살면서 자가용 ‘포니’에 대한 열망을 가졌던 수많은 한국인의 ‘꿈’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열망(passion)’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세계적 규모의 성장이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단지 경제개발을 위한 산업이었다고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다른 에너지가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열망은 ‘이성(ration)’이 불가능하다고 한 일도 이루어 내는 에너지를 주는 근원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개발된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이자 현대자동차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는 완전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디자인되고 설계됐고, 이제는 거리에서 만나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기술로 포니를 복원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포니가 한국의 클래식 카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꿈을 꾸어 봅니다. 외국의 미니나 비틀처럼 말입니다.


 

[디지털 기술로 복원된 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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