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I 황욱익 (모터스포츠 칼럼리스트)


 


아직은 국내에서 비인기 종목인 모터스포츠는 사실 단순히 자동차가 빨리 달리는 것에만 초점을 둔 것은 아닙니다. 인간과 기계가 함께 승부를 겨루기 때문에 무엇보다 조직적이고 즉각적인 판단이 중요합니다. 이 점은 레이스에 출전하는 선수를 비롯해 팀 스태프, 경기운영위원회, 각 포스트의 오피셜과 플랙 마샬 등 레이스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래서 모터스포츠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복잡하고 조직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엄밀히 얘기하자면 모터스포츠의 룰은 매우 복잡합니다. 매년 달라지는 경주차와 경주차의 베이스가 되는 일반 자동차, 혹은 완전 경주용으로 제작된 머신이 더욱 빨라지고 더욱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발표되는 기술규정과 운영규정은 웬만한 소설책보다 두껍고 레이서와 팀 스태프, 운영위원회, 오피셜, 미디어 등은 이 규정집을 모두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굉장히 복잡하고 번거롭지만 레이스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최소 규정만 알아두면 더욱 재미있게 레이스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내용은 모터스포츠를 전혀 모르더라도 알고 있으면 현재 서킷의 상황은 어떤지 경기 운영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내용입니다. 또한 국내 레이스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열리는 모든 모터스포츠 이벤트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부분이라 한 번 이해해 두면 더욱 재미있게 모터스포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우선 모터스포츠에서 서킷의 상황을 드라이버들에게 전달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깃발입니다. 조금은 원시적으로 느끼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지구 밖으로 사람을 보낸 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라는 의문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겁니다. 레이스가 열리는 서킷은 마라톤을 비롯해 철인 삼종 경기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 가장 넓은 경기 구간을 뜻합니다. 짧게는 1km 내외 길게는 30km 내외의 구간에서 경쟁이 펼쳐지다 보니 가장 빠르게 신호를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깃발에 모터스포츠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모터스포츠가 처음 시작했을 때와 같습니다. 


초기에는 출발점과 골인점에서만 경기의 시작과 끝남을 나타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코스 안에 포스트가 만들어지고 경기운영회에서 전달된 내용이 포스트를 통해 선수들에게 전달되는 방식으로 진화했습니다. 각 포스트는 서킷 내에 일정한 구간 단위로 만들어져 있는데 포스트의 역할은 레이스를 감시하고, 경기위원회에서 하달되는 내용을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일종의 초소 역할을 하는 포스트는 플랙 마샬과 오피셜 등 최소 2명 이상의 인원이 상주합니다. 이들이 흔드는 깃발이 전체적인 레이스의 상황을 뜻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때에 따라서는 상황이 발생한 구간에서만 깃발을 흔드는 일도 잦습니다.



[악천후 혹은 야간 레이스에 주로 사용되는 디지털 플랙]


원시적이긴 하지만 모터스포츠가 정형화된 이후 깃발 신호는 현재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깃발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오류가 적고, 시인성이 확실하며, 전달 여부도 바로 확인 가능하다’라는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일부 서킷의 경우 신호등과 같은 디지털 플랙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악천후나 야간 레이스 등에서 깃발의 보조적인 역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깃발 신호는 그래서 가장 전통적이고 레이스를 상징하는 아이콘과 같은 존재입니다. 참고로 각 포스트에서 깃발의 발령은 메인 포스트(스타트 라인에 있는 포스트)부터 시작하거나 경기위원회의 발령 지시에 따릅니다. 간혹 포스트 오피셜이 임의로 발령하는 경우도 있지만 경기의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럼 가장 기본적으로 많이 쓰이는 10가지 깃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레이스의 시작은 녹색기]


녹색기는 코스가 정상적이며, 레이스를 하기에 문제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스타트 그리드에 경주차들이 정렬이 완료되면 맨 후미에서 오피셜이 녹색기로 레이스 시작을 알립니다. 메인 포스트에서 녹색기가 발령되면 경주차들은 출발해 포메이션 랩에 돌입합니다. 과거에는 레이스 스타트 때 국기를 사용하거나 했지만 최근에는 스타트 신호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경기 중 녹색기 발령은 코스 내 위험요소가 사라져 레이스가 다시 시작된다는 의미를 전하는데 녹색기가 발령된 시점부터 다시 레이스에 돌입할 수 있습니다. 



 

[레이스의 끝은 체커기]


아마 모터스포츠를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깃발이 바로 체커기(체커드 플랙) 입니다.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체커기는 전통적으로 레이스의 끝남을 알립니다. 레이스가 끝난다는 의미는 1등이 결정되었다는 의미인데 규정된 주행거리에 가장 먼저 도달하거나 레이스 시간이 종료되었음을 알립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가장 먼저 체커기를 받는 드라이버가 우승자라는 의미입니다. 체커기는 다른 깃발과 달리 전체 레이스 중의 가장 마지막에 메인 포스트에서만 발령됩니다. 레이스 도중에는 절대 발령될 일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빠른 차가 뒤에서 접근 중이라는 청색기]


청색기는 각 포스트 오피셜이 임의로 발령할 수 있는 대표적인 깃발입니다. 청색기의 의미는 ‘뒤에 빠른 차가 접근 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순위 경쟁을 하고 상황에서 청색기가 발령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청색기가 발령되는 상황은 주로 1랩(한 바퀴)이상 차이 나거나 두 개 이상의 클래스가 혼주 할 때 상위 클래스 경주차가 하위 클래스 경주차를 앞지를 때 발령됩니다. 청색기가 발령되는 이유는 느린 차(혹은 드라이버)에게 뒤쪽에서 빠른 차가 접근 중이니 경기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진행하라는 의미입니다. 어찌 보면 레이스를 하고 있는 드라이버들이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깃발 입니다.



[노면의 상태가 좋지 못함을 나타내는 오일기]


주황색과 적색으로 표시되는 오일기(oil flag)은 노면이 미끄러우니 주의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는 사고나 기타 사유로 인해 경주차에서 흐른 오일이 노면에 흘러 미끄럽다는 의미입니다만 오일이 아니더라도 노면에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발령됩니다. 주로 오일기가 발령되면 경우에 따라 포스트 오피셜이나 구난 팀이 투입돼 코스를 정리할 때가 많습니다. 오일기가 발령된 구간에서 아무래도 드라이버는 조금 더 조심해야겠죠.



[코스 안에 구난차나 구급차가 있음을 나타내는 백색기]


레이스 도중에 사고나 코스 정리를 위해 경주차가 아닌 구난차나 앰뷸런스가 있으니 주의하라는 의미입니다. 레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바로 안전입니다. 사고나 코스 손상, 혹은 경주차 이상으로 인해 경주차가 코스 중간에 멈추거나 즉시 코스 밖으로 견인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백색기가 발령이 됩니다. 백색기는 코스 안에 구난차나 구급차가 있다는 의미와 함께 드라이버에게 주의의 의미도 함께 전달합니다.



[추월 금지를 나타내는 황색기]


레이스가 도중 사고나 기타 상황을 알리는 깃발입니다. 황색기는 부동과 진동, 두 개 발령 등에 따라 상황을 전달합니다. 공통으로 황색기가 발령되면 추월은 금지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서행을 유도하기도 하며, 모든 포스트에서 발령되거나 일부 구간에서만 발령되기도 합니다. 황색기 상황에서 추월하게 되면 패널티를 받습니다. 그만큼 경기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부 구간에서 발령되는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 원인은 사고가 잦습니다. 황색기가 발령되면 사고가 있거나 코스 내에 위험 상황이 발생했다는 의미입니다.



[경주차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는 오렌지볼기]


검은색 바탕에 주황색(오렌지색) 원형이 가운데 자리 잡은 오렌지볼기는 레이스 도중 파손된 경주차에 발령되는 깃발입니다. 경기 도중 사고나 기타 사유로 파손되어 정상적인 레이스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되거나 파손에서 발생한 파편이나 오일 등을 서킷에 흘리면서 주행하는 경주차가 해당됩니다. 사실 레이스에서 피트로 경주차를 불러들인다는 것은 굉장한 손실인데요 정상적인 레이스가 어려운 경우가 아닌 이상 일단은 주행하도록 합니다. 피트에 경주차가 들어갈 때는 무엇인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경주차가 파손되었다고 무조건 피트로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렌지볼기는 경기 위원회에서 레이스에 문제가 있거나 혹은 안정상의 이유, 다른 경주차들의 방해 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오렌지볼기를 엔트리와(경주차 번호) 함께 발령합니다. 오렌지볼기를 받은 드라이버는 즉시 피트로 들어와 문제점을 해결하고 레이스에 복귀해야 합니다.



[경고의 의미를 가진 흑색반기]


검은색과 백색이 반으로 나뉜 흑색반기는 스포츠맨십 위반한 드라이버에게 엔트리와 함께 발령되는 깃발입니다. 페널티를 받기 바로 직전이라고 보시면 이해가 쉬울 텐데요 숏컷(서킷이 아닌 곳을 이용해 주행 거리를 줄이는 행위)이나 와이드 런(속도를 줄이지 않고 안전지대를 이용하는 행위), 가벼운 푸싱(경쟁자와 접촉하는 행위)이 있을 경우에 발령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흑색반기는 어떤 페널티나 불이익을 직접 주지는 않지만 경기 중인 드라이버들에게 ‘당신의 주행이 스포츠팬십에 위반되고 있습니다’를 알리는 경고의 의미입니다.



[페널티를 지시하는 흑색기]


레이스 도중에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순위를 바꾸거나 규정에 위반되는 행위가 있을 때는 엔트리와 함께 흑색기가 발령됩니다. 흑색기를 받은 드라이버는 보통 3랩 안에 페널티를 이행해야 합니다. 1000분의 1초를 다투는 모터스포츠에서 패널티는 매우 치명적인데 피스 스루(피트를 지나가야 함), 스톱앤고(피트의 지정된 위치에 지정한 시간 동안 완전히 정지했다 출발)등 사안에 따라 다양합니다. 만약 3랩 안에 페널티를 이행하지 못하면 실격처리 됩니다. 흑색기 이후 3랩의 여유를 주는 이유는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드라이버가 흑색기 발령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해서입니다. 



[레이스 중단을 알리는 적색기]


적색기는 더 이상 레이스를 진행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주로 대형사고나 악천후로 인해 발령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가장 사고가 잦다는 스타트 직후 발령했을 때와 경기 도중 발령했을 때의 사후 조치가 다릅니다. 보통은 경기 시작 후 3랩 이전에 발령되면 다시 스타트를 하거나 전체 주행의 75%를 넘어갔을 경우 마지막 랩 기준으로 순위를 정하기도 합니다. 사실 적색기는 발령보다 사후 조치에 따라 레이스의 흐름을 좌우하게 됩니다.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고 선수들과 팀의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누군가에게는 손해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이익도 될 수 있는 양날의 검과 같은 깃발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레이스의 일부입니다. 



[야간에 높은 시인성을 발휘하는 SC 사인보드]


메인 포스트에서 발령되는 SC 사인보드는 레이스 도중 혹은 스타트 때 세이프티카의 선도가 진행된다는 의미입니다. 경기 시작에서 SC 스타트를 하는 경우는 대부분이 악천후로 인해 안전상 위험이 있을 때이며, 경기 도중에는 사고나 기타 정상적인 레이스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입니다. 물론 레이스 운영이 완전하게 어려워 경기가 중단되는 때가 아닌 정리 후 레이스 진행이 가능할 때입니다. SC 사인보드가 발령되면 세이프티카가 전체 대열을 이끌게 됩니다. 이때는 추월이 금지되고 현재 순위 그대로 세이프티카를 따라 서행하면서 진행합니다. 천정에 경광등이 달린 세이프티카는 코스의 상황이 정상화 될 때까지 전체 레이스 대열을 이끌며 경광등이 꺼지면 세이프티카의 퇴장이 임박했다는 의미입니다. 참고로 세이프티카의 드라이버는 전직 레이서들이 많으며 고출력 경주차의 대열을 이끌어야 하는 만큼 세이프티카의 성능도 경주차와 비슷하거나 더 높은 수준입니다.  



 


모터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깃발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복잡하다고요? 의미를 알고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깃발 신호는 전 세계 공통으로 사용하는 신호라 국내외 모든 레이스를 관람할 때 알아 두시면 더욱 재미있게 모터스포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깃발 신호는 서킷 라이선스나 드라이버 라이선스 교육에도 빠지지 않은 필수 항목입니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숙지해야 할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알아두면 2배 이상의 즐거움을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 단순히 빠르게 달리는 것만이 모터스포츠는 아닙니다. 그 안에는 좀 더 재미있고 공정한 경기를 만들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룰이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깃발 신호를 비롯해 오늘날 우리가 모터스포츠에 관해 얘기하는 내용들이 이미 50년 이상의 시간을 거쳐오면서 진화하고 개선된 것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모터스포츠는 복잡하게 보이지만 가장 합리적이고 기본 틀이 잘 갖춰진 스포츠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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