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l 유정열(여행작가)



성인이 많이 살았다던 성주산은 오서산과 함께 보령을 대표하는 산입니다. 이 산은 한때 충남에서 석탄이 가장 많이 생산된 곳입니다. 산 주변에는 광부와 가족들이 살았던 집들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그들의 삶을 잊지 않기 위해 석탄박물관을 세웠죠. 제 속살을 내어주고도 여전히 듬직한 성주산은 자연휴양림으로 거듭났습니다. 성주산을 감싸고 흐르는 심연동 계곡을 건너면 통일신라 때 사찰이었던 성주사지가 있습니다. 면면히 이어져 온 역사의 뒤안길을 걷는 일은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오래된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보령시가 한눈에 담기는 옥마산 활공장, 여행을 마무리 하기 좋은 곳이다]


꿀맛 같은 휴식을 즐긴 삽시도에서 나와 보령시 성주면으로 향했습니다. 성주면은 1980년대만 해도 석탄산업이 활발했던 곳입니다. 1997년에 펴낸 <석탄통계연보>에 의하면 강원도에 이어 2위의 생산량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1949년 영보탄광이 최초로 개발된 후 탄광만 22개소에 이를 만큼 번창했지만 1994년 10월 심원탄광이 폐광함으로써 45년의 석탄산업을 마감했습니다. 이후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석탄박물관인 보령석탄박물관이 들어섰습니다. 


[성주산 폐광위에 지은 석탄박물관 볼 것이 많은 박물관이다]


석탄박물관 내부전시실로 들어가면 석탄 채굴에서 무연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2층 전시실은 탄광에서 근무하던 광부들의 기록물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그들의 근무복과 안전모, 월급봉투, 보안교육증서 등의 자료와 벽면에 적힌 글귀를 보노라면 광부들의 녹록하지 않은 단면을 알 수 있습니다. 


[보령석탄박물관 전시실에 옛 추억을 떠올리시는 어르신들]


“땅속 깊은 곳, 막장은 30도를 웃도는 지열로 열기가 가득하고, 지하수까지 흐르고 있어 습하기까지 했습니다. 고된 하루를 보내고 동료 광부들과 함께 탄가루를 씻어준다는 돼지고기를 안주로 막걸리 한 사발씩 쭉 들이키며 하루의 피로를 털어 버리곤 했습니다.” 


[갱내에서 쥐를 잡으면 안 되고 죽음과 관련된 단어조차 금기시한 광부들]


[탄광과 광부에 대한 자료가 모인 2층 전시실]


2층에서 지하에 있는 갱도전시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의 이름은 ‘수직갱엘리베이터’입니다. 탑승하면 지하 400m의 갱도로 내려가는 효과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처럼 무섭기도 하고 짜릿한 기분도 듭니다. 

갱도전시장은 실제 채굴했던 성주리 폐갱도를 직접 관람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보령 최대의 탄전 마을이었던 성주리 탄광촌의 풍경과 광부들의 삶을 실루엣 영상으로 보여줍니다. 그 시절,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3교대로 일했던 광부들의 모습이 애잔합니다. 


[갱도전시장은 광부의 삶을 재조명하는 공간이다]


모의 갱도에 들어서면 광부들이 석탄을 채굴하는 모습을 실물처럼 꾸며 놓았습니다. 천천히 전시물을 관람하는데 갱도 내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반소매 옷만 입으면 조금 추울 정도입니다. 


    [어두운 갱도 안에서 작업하는 모습과 식사하는 광부를 재현한 디오라마]


이 갱도를 따라 나가면 ‘연탄만들기 체험장’입니다. 체험은 미니 연탄 틀에 실제로 사용하는 석탄가루를 넣어 망치로 단단하게 다져야 합니다. 작다고 얕보면 안 됩니다. 생각보다 망치질을 힘껏 해야 단단한 연탄이 만들어지니까요. 체험장에는 연탄아궁이와 온돌방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시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미니 연탄은 손바닥만 한 크기로 아이와 함께하기 좋은 체험이다]


석탄박물관에서 성주면사무소로 향하면 화장골마을을 만나게 됩니다. 화장골은 성주산 일대에 여덟 개의 모란형 명당 중 한 곳에 있는 계곡이란 뜻입니다. 마을에는 마지막 남은 광산촌 사택들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습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성주산 그늘 속에서 한적한 풍경을 드러냅니다. 


[화장골마을의 활짝 웃는 광부조형물 뒤로 옥마산이 보인다]


한 때 보령 시내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던 곳, 석탄산업이 활발할 때, 광부들의 지친 몸을 달래 준 술집들이 번창했고 성주초등학교에는 아이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이 시절 보령 경제에 큰 힘이 되었던 성주 탄광촌은 노인의 침침한 눈처럼 이제 희미해져 갑니다. 집에는 연탄 대신 가스통들이 벽에 붙어있습니다. 마을을 지나는 동안 할머니들의 연예인 얘기가 귓전에 한참 머물다 갑니다.


[잘 보존된 사택, 지붕 아래 ‘84-10-2’의 숫자가 이채롭다]


[오랜 세월을 지켜온 사택과 물탱크]


마을에서 계곡을 따라가면 우람한 송림 사이로 도로가 나타납니다. 화장골 계곡을 따라 조금 더 가면 ‘성주산 자연휴양림’입니다. 산림청에서 폐광지역을 개발하여 휴양림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매표소에서 출발해 약 4㎞에 이르는 산책로는 삼림욕을 즐기기에 적당합니다. 여름철 피서객들의 쉼터인 이곳은 가을이 깊어갈수록 더 아름다운 곳이죠. 


[여름 끝자락에 피서객은 줄었지만 아이들의 계곡은 여유롭다]


[새소리와 은은한 자연의 향기는 고단함을 지워준다]


성주산 자연휴양림의 명소는 편백나무 산책로입니다. 곧게 뻗은 편백나무 사이로 침상이 놓여있어 누워있거나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편백나무 숲에서 얼굴을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겠죠. 


[편백나무 숲에서 가만히 쉬어가는 여행자들]


[편백나무의 피톤치드는 소나무 보다 약 5배 더 많다]


휴양림에서 5분 거리에 성주사지가 있습니다. 성주산을 뒤로하고 심연동계곡을 앞에 둔 성주사지는 허허벌판에 4개의 탑과 비석만 남아있습니다. 폐사지이지만 과거 위엄을 지금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무성한 잡풀들이 운치를 더해주는 성주사지 방면 들판]


성주사지는 무열왕의 8세손인 낭혜화상이 창건한 사찰입니다. 원래 이름은 오합사였는데 낭혜화상이 덕을 널리 알리자 신라조정에서 성주사란 이름을 내렸습니다. 사찰 터에 남아 있는 유일한 전각 안에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가 있습니다. 비문은 고운 최치원이 짓고 그의 사촌인 최인곤 선생이 글을 썼는데요. 낭혜화상을 위해 세워진 탑비로 신라 시대의 비석으로는 최대 크기이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은 신라 시대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성주사지 오층석탑에서 본 금당터와 삼층석탑과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백월보광탑비의 이수부분에는 용들의 움직임이 섬세하게 느껴진다]


 

[성주사지 석불입상의 얼굴과 가슴부위는 안타깝게도 훼손되었다]


금당터 앞에 오층석탑 1기와 뒤쪽에 삼층석탑 3기도 성주사지 만의 특별한 풍경입니다. 무려 천 년 동안 햇살을 받고 밤을 맞았던 탑입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에 이 성주사지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4개의 탑은 마치 나를 보호해주는 근위병 같습니다. 

과거 2천 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다던 성주사지, 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은 물이 심연동 계곡을 하얗게 만들었다는 사찰은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리고 다시 일어서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끈끈하게 이어 온 석물들로 성주사지는 고고하고 아름다운 사찰 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늠름하고 조형미가 아름다운 성주사지 오층석탑은 보물 제19호다]


[성주사지 삼층석탑은 각각 보물과 지방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제 해가 점점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인 옥마산 활공장으로 향합니다. 활공장은 보령시로 가는 성주터널에 진입하기 전, 옥마산 정상으로 가는 오른쪽 산길로 가야 합니다. 이 길은 보령시와 성주, 부여를 이어주던 구절양장의 옛길인데요. 길 중간에 있는 정자인 옥마정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야 합니다.

차 한 대 지나갈 좁은 도로를 따라 아반떼는 산다람쥐처럼 날렵하게 산길을 오릅니다. 10여 분 정도 지나 차 5대가량 주차할 공간이 도착지입니다. 활공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서둘러 올라갔습니다만 바다 위에 짙게 깔린 구름이 해를 삼키고는 이내 급격한 어둠이 찾아들었습니다. 우두커니 서서 높은 하늘과 발 아래 점점이 불을 밝히는 보령시와 멀리 대천해변을 바라봅니다. 새가 되어 난다면 이런 풍경은 덤이겠구나 생각하면서 말이죠. 


[이카루스 후예들의 성지 옥마산 활공장, 노을이 짙게 깔리고 있다]


보령 출신의 소설가 이문구 선생은 <관촌수필>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실하게 살다 간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야”

소설처럼 격동의 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보령에 있습니다. 보령시를 밝히는 수많은 불빛처럼 반짝입니다. 짧은 일정에 다 돌아볼 수 없어 아쉬운 보령이지만 훗날 다시 찾아올 것이란 기대감으로 설레기도 합니다. 가을의 선선한 날씨에 가족과 함께 떠나보세요. 보령은 흥미로운 여행지입니다.


[활공장에서 성주면 방향의 야경, 여행을 함께 한 아반떼도 붉을 밝혔다]



보령에서 맛보는 별미


황해원

황해원은 얼큰하고 고소한 맛의 짬뽕을 잘하는 중식당입니다. 메뉴는 짬뽕과 자장면 두 가지, 하루 점심시간만 장사를 합니다. 40년 내공을 자랑하는 황해원은 돼지고기와 오징어가 가득한 짬뽕은 구수한 맛과 시원한 맛이 매력적입니다.

▶ 보령시 성주면 심원계곡로 6(성주리 196-1), 041-933-5051 


[돼지고기살과 오징어로 맛을 낸 황해원 짬뽕]


배가네생선구이

생선구이와 조림 전문식당입니다. 성주산 자연휴양림 입구에 있는데요. 생선은 집에서 쉽게 해먹는 식재료가 아니라서 주로 밖에서 많이 사 먹는 음식이죠. 조림은 칼칼하고 감칠맛이 좋고 구이는 담백합니다. 곁들인 반찬과 된장찌개도 맛이 좋습니다.

▶ 충남 보령시 성주면 화장골길 20(성주리 210-2), 041-935-7892


[성주리 배가네식당의 생선구이 상차림]



여행정보


▶ 보령석탄박물관: 보령시 성주면 성주산로 5083(개화리 114-4), 041-934-1902

운영시간: 3월 ~ 10월(하절기) 09:00 ~ 18:00, 11월 ~ 2월(동절기) 09:00 ~ 17:00, 

매주 월요일, 매년1월1일, 설날연휴, 추석연휴, 관공서의 공휴일 다음날은 휴무

입장료: 어른 1,500원, 청소년, 군인 800원, 어린이: 500원

▶ 성주사지: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2

▶ 성주산자연휴양림: 보령시 성주면 화장골길 57-228, 041-934-7133

입장료: 어른 1000원, 청소년 800원, 어린이 400원, 주차료: 소형/중형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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