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투리로 산의 정상을 ‘만디’라 부릅니다. 이 만디 아래에 다닥다닥 어깨를 맞댄 마을들이 있죠. 그 마을들을 연결한 것이 산복도로입니다. 부산의 산동네 역사는 6ㆍ25전쟁부터 시작됐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피난을 온 사람들이 등을 기대고 살만한 평평한 땅은 별로 없었습니다. 산으로 기어올라야 했던 이유입니다. 전쟁의 와중에 지어진 집들은 움막에서 판잣집으로 벽돌집에서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며 오늘날의 부산 풍경을 만들었습니다. 골목을 돌아보면 과거 그들이 살았던 흔적과 애환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부산 골목 여행은 우리 근대사를 만나는 일입니다.



[산복도로에서 본 초량동과 부산항 일대]


‘니는 영도다리 밑에서 주어 왔다 안카나’

부산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본 말입니다. 말을 안 들으면 다시 다리 밑에 두고 온다는 엄마의 말 한마디에 출생의 비밀에 대해 고민했다고 하죠. 그 다리가 바로 영도다리입니다. 부산항과 영도를 잇는 다리로 지금은 영도대교로 불립니다. 


포악했던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가설된 연륙교입니다. 일제가 영도를 군사기지로 삼으면서 물자를 원활하게 수송하기 위해 건설한 것이죠. 영도다리는 다리 일부가 위로 올라가는 도개식입니다. 준공식 날, 그 진귀한 광경을 보기 위해 6만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고 합니다. 당시 부산 인구가 16만이었다고 하니 상당히 많이 붐볐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롯데백화점 광복점 옥상 전망대에서 본 영도다리 도개식]


영도다리는 부산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곳입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이 다리 위에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영도다리 부근에서 행상하거나 조선소와 남항에서 고된 노동자로 먹고살았습니다.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에 가사처럼 피난민들이 가족을 찾던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식당과 상점이 많았던 영도다리 주변 지금은 잘 정비되어 있다]


그러던 영도다리는 1966년 도개가 중단되었습니다. 영도까지 연결하는 상수도관을 다리 밑에 설치하면서입니다. 세월이 흘러 낡은 영도다리를 확장하는 등 재건설하면서 47년 만에 도개 기능이 재개되었습니다. 옛날에는 큰 배가 지나가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관광의 목적으로 도개를 합니다. 매일 오후 2시가 되면 15분간 다리를 들어 올리는 이벤트인데요. 부산의 명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영도대교 부근에서 피란민들을 재현한 조형물]


‘만디 아래 초량이바구길 같이 댕겨 볼까예’

영도다리에서 부산역 건너편에 있는 초량동으로 향했습니다. 초량동은 한때 유흥가 밀집지역이었던 곳으로 차이나타운과 러시아 거리가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골목을 잇는 ‘초량 이바구길’이 만들어졌는데요. 이바구란 경상도 사투리로 이야기를 뜻합니다. 부산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심(중구, 서구, 동구, 영도구 등)의 골목 속 이야기를 따라 걷는 코스입니다. 


출발은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 종합병원인 백제병원에서 합니다. 이어서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창고인 남선창고와 초량교회를 지나 가파른 산동네를 오르는 168계단, 김민부전망대, 이바구공작소 등을 거쳐 산복도로를 따라 원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근대사의 한켠에 자리한 백제병원은 지금 분위기 좋은 카페로 변신해 있습니다. 걷기에 앞서 풍미 가득한 커피 한 잔을 마셨습니다. 감미로운 재즈가 들리고 속살을 드러낸 벽과 창문에서 세월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구 백제병원은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 종합병원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구 백제병원 1층에 있는 커피 전문점 브라운핸즈]


발걸음을 옮겨 터만 남은 남선창고를 지나면 옛 초량동의 모습을 확인 수 있는 담장갤러리를 만납니다. 흑백 사진들만 보더라도 당시 얼마나 어렵게 살아가야 했는지 알 수 있죠. 이윽고 168계단에 이르면 그 까마득한 높이에 다리가 절로 풀리는데요. 이 계단은 산복도로에 닿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걱정 안 해도 됩니다. 168계단 옆에는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관광객에게도 특별한 체험이 될 계단 옆을 따라 오르내리는 모노레일은 고령의 주민들을 위해 설치한 것으로 만약 어르신이 계시면 먼저 양보해야 한다는 것 잊지 마세요.



[까마득한 168계단과 골목 사이를 지나는 모노레일]


모노레일 중간에 있는 김민부 전망대에 서면 탁 트인 부산항 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김민부는 부산 동구 출신의 천재 시인으로 짧은 생애를 살다간 그를 기리기 위해 설치한 전망대입니다. 168계단 끝은 지역 게스트하우스인 이바구 충전소와 연결되고 초량동 당산을 지나면 이바구공작소에 닿습니다. 이곳에서 초량동과 산복도로 주변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주하는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이바구 공작소에서 옛이야기를 듣는 여행자들과 벽에 전시된 168계단 펜화]


이바구 공작소에서 골목을 따라가면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의술을 펼친 고 장기려 박사님 기념관이 있고 내리막과 오르막을 번갈아 걸으면 산복도로입니다. 이 도로 따라 부산의 풍경을 곁에 두고 가면 유치환 우체통에 이르게 됩니다. 유치환은 부산 경남여고에서 교장을 역임했었지요. 이곳 역시 전망이 무척 뛰어난 곳으로 붉은 노을이나 밤을 밝히는 야경도 멋진 뷰포인트 입니다.



[더 나눔’ 센터 안에 있는 장기려 박사의 초상]


 

[골목길과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묘하게 맞닿은 곳과 길고양이]


유치환 우체통에서 까꾸막 카페를 들러 골목 아래로 계속 내려오면 초량시장인데요. 여기까지 오면 다 내려온 것입니다. 시장 구경을 하며 큰 대로변으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부산역입니다.



[유치환우체통이 있는 전망대에서 부산의 경치가 막힘 없이 시원하게 드러난다]


‘매축지 까정 머볼게 있다고 왔능교? ‘

산복도로를 잇는 마을들은 모두 산자락이란 공통점이 있죠. 이에 반해 매축지마을은 평지에 있습니다. 매축지란 바다를 매운 땅이란 뜻으로 행정명은 범일동입니다. 1926년 일본군이 바다를 매립한 곳으로 이곳에서 군마를 관리했고 각지에서 징병해 온 군인들의 임시 거처를 위한 막사를 지었습니다. 광복 이후 귀국한 동포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마을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개발의 바람으로 주변에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마을은 섬처럼 남았습니다.



[매축지문화원에서는 당시 피란민이 모여 살던 역사가 잘 드러나 있다]


마을을 돌아보면 집들의 형태가 특이합니다. 처음 막사를 나눠 부엌과 방 한 칸의 5평 칸막이 집으로 만든 일종의 집단주거지 형태였습니다. 해방 이후 마을 전체에 큰불이 났고 다 타버린 터에 다시 판잣집을 짓고 살았지만 그들이 살아야 할 공간은 막사 때처럼 좁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판자는 벽돌로, 지붕은 슬레이트로, 돈을 번 사람들은 콘크리트 건물을 세우기도 했죠. 구획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만 집 모양들은 제각각입니다. 자동차 한 대 지나갈 골목과 사람하나 간신히 지나갈 골목으로 나뉘고 골목 중간중간에 공동화장실이 있습니다.


 

[마을 중심에 있는 담뱃가게, 이곳의 시계는 천천히 돌아간다]


   

[골목도 집도 좁아서 화장실은 밖에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골목에는 연탄이나 물을 보관하는 플라스틱 통과 장독, 연탄보일러, 화분들 그리고 세탁기까지 놓여있습니다. 집이 비좁은 탓에 살림살이를 골목에 내다 놓은 것이죠. 어떤 집들은 이웃집을 사들여 평수를 넓히거나 자기 집 크기만큼 그대로 2층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마을 골목은 이동의 공간이면서 만남의 장소이자 집의 일부다]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특이한 풍경을 볼 수 있는데요. 물을 담은 페트병들이 집 앞에 여러 개 놓여 있었습니다. 마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정다방의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고양이가 똥을 못 싸놓게 한 것이라더군요. 아마 혼자 볼일을 봐야 하는데 자기의 모습이 비친 페트병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을 담은 페트병은 고양이를 조용하게 쫓아내는 생활의 지혜다]


  

[매축지 마을에서는 심심치 않게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를 보며 걷던 중 전봇대에 종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 종은 크게 불이 나면 귀가 어두워 미쳐 집에서 탈출하지 못한 어르신들이 또 계실까 봐 단 것입니다. 전화기도 없던 시절의 비상대피 경보시설인 셈이죠.



[전봇대에 달린 종은 매축지마을에서 선정한 보물 중 하나이다]


이처럼 매축지마을은 골목의 원형이 잘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아저씨', '친구', '하류인생' 등을 이곳에서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단 이곳을 여행하면 정다방을 찾아 달달커피 한 잔 마시며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세요. 커피값은 마음으로 정하고 기부금 통에 넣으면 됩니다. 



[골목은 커피 한잔과 함께 쉴 작은 정원이기도 하다]


매축지마을 여행은 재미있습니다. 아파트와 고층 건물이 말해주지 않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죠. 그 이야기는 과거이기도 하지만 현재진행형이기도 합니다. 다음에는 부산의 사진 명소를 소개하겠습니다. 



[산동네의 애환이 담긴 산복도로에서 오늘의 여행을 마친다]



부산에서 맛보는 별미


스완양분식

성남이로에 있는 스완양분식은 돈가스전문점입니다. 스프와 돈가스, 양배추샐러드, 밥, 깍두기가 나오는데요. 옛날 경양식집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오천원이란 가격입니다. 돈가스 고기도 괜찮지만 소스가 맛있습니다. 함박스테이크와 오므라이스도 잘 나가는 메뉴입니다.

▶ 부산 동구 성남이로 22(범일동 252-1637), 051-634-2846


[스완양분식의 돈가스 깔끔하고 저렴하다]


은하갈비 

초량에는 돼지갈비 골목이 유명합니다. 6•25전쟁 이후 부산항에 일자리를 찾아 온 노동자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던 것으로 돼지고기를 손질하고 남은 몇 점 붙어있지 않은 갈빗대를 구워 팔기 시작했는데요. 은하갈비는 갈비를 익히는 과정에 타는 것이 싫어서 두꺼운 철판 위에 호일을 올려 익힙니다. 달달한 갈비살도 괜찮지만 특제 양념간장에 찍어 먹는 맛이 독특하면서도 맛있습니다. 

▶ 부산 동구 초량중로 86(초량동 264-1), 051-467-4303


[은하길비는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그 내공도 깊다]


삼진어묵

삼진어묵은 지금 남아있는 부산 어묵공장 중 가장 오래된 곳입니다. 영도에 있는 삼진어묵 제1공장 1층에 어묵베이커리가 있는데요. 다양한 어묵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땡초가 들어간 것, 오징어가 섞인 것, 버섯, 치즈, 맛살이 섞인 어묵 등 입맛대로 고르면 휴게실에서 시식도 가능합니다. 쫄깃한 맛과 풍미로 간식으로 제격이고 선물용으로도 괜찮습니다. 

▶ 삼진어묵: 부산시 영도구 태종로99번길 36(봉래동2가), 051-412-5468


[삼진어묵 베이커리 판매장, 어묵의 종류가 이토록 다양할 줄은 미처 몰랐다]


여행정보


▶ 영도대교: 부산 중구 중앙대로 2(중앙동7가 20-1)롯대백화점 광복점에 주차

▶ 삼진어묵: 온라인 판매 및 예약 www.samjinfood.com

체험관: 주중(10:00, 1:30, 3:30), 주말(10:00/11:00/13:30/14:30/15:30/16:30)

사전 예약제로 운영 051-412-5468(ARS연결 2번), 체험 10분 전 도착.

역사관: 09:00~18:00까지 운영, 무료 

▶ 초량이바구길: 부산시 동구 중앙대로209번길 16(옛백제병원), www.2bagu.co.kr

부산역광장주차장이나 초량동 차이나타운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는 것이 편하다.

▶ 매축지마을: 부산 1호선 좌천역에서 하차, 4번 출구로 나와 지하도를 건넌 후 길 끝의 기찻길 육교를 건너면 매축지마을이다. 매축지 마을 안에는 차량을 주차하기 쉽지 않으며 스완양분식 주변에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조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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