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I 황욱익 (모터스포츠 칼럼리스트)



레이스를 좋아하거나 즐긴다고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비슷합니다. ‘위험하지 않아요?’ 이 질문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환상은 매우 다양합니다. 스피드를 겨루는 레이스는 당연히 일반적인 운전 상황보다 위험요소가 많고 신경 쓸 것들이 많습니다. 또한 엔진의 최대 성능을 끌어내는 고회전(rpm) 주행은 일반 주행에서는 거의 사용할 일이 없다는 것도 이 원초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 동기이기도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은 사실 없습니다. 레이스라는 상황은 경우에 따라 위험할 수도 있고 오히려 일반적인 주행보다 안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 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양한 안전장치가 있어야 성립되는 레이스 


[드라이버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장비들]


이번에 다룰 내용은 사실 일반적인 내용은 아닙니다. 가장 기초적이긴 하지만 ‘레이스’라는 특수한 상황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해 레이스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번거롭고 귀찮은 과정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다만 모든 레이스는 이번에 설명하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우선 레이스는 지난번 포스트에서 설명한 대로 ‘일정한 구간을 가능한 동일한 조건에서 누가 더 빨리 주파하느냐’ 입니다. 길거리에서 진행되고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폭주’하고는 엄연히 다릅니다. 그만큼 안전에 대해서 엄격 규칙을 준수해야 레이스에 참가할 수 있으며, 이는 동네 단위의 작은 레이스부터 F1과 WRC에 이르기까지 모든 레이스에 공통으로 적용됩니다.




모터스포츠는 스피드 경쟁을 통해 쟁취하는 순위도 중요하고, 경주차를 어떻게 세팅하느냐도 중요합니다. 여기에 관람객이 없으면 안 되겠죠? 미디어를 통한 노출도 중요하고 자동차 메이커의 신기술을 적용하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레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안전’입니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레이스는 인정받을 수 없으며, 인명사고가 잦다면 사회적인 비난도 피할 수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레이스를 통해 진보한 것은 스피드와 양산차에 적용되는 신기술과 함께 안전도 함께 발전해 왔습니다. 물론 초기 레이스와 비교적 최근인 30년 전만 하더라도 안전 대신 스피드가 강조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인간이 컨트롤하기 어려운 괴물을 만들기도 했으며, 우리가 지금 누리는 안전장치들을 위해 수없이 많은 생명이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모터스포츠 분야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안전하고 보다 편리한 차들을 만들 수 있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일차적인 안전은 드라이버부터 



이처럼 레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입니다. 코스 내의 마샬과 오피셜들이 가능하면 예상치 못한 사고나 상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코스 밖 포스트에서 근무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입니다. 오피셜들이나 마샬들 만큼 드라이버의 보호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방송이나 미디어에 노출되는 드라이버들은 다양한 안전 장구를 장착한 모습일 때가 많습니다. 혹자는 멋 때문에 그런 복장을 착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얘기입니다. 물론 같은 조건이면 보다 멋 있고 화려한 디자인이면 좋겠지만 기본적으로 드라이버들이 착용하는 안전 장구와 복장은 철저하게 드라이버를 보호하기 위한 기능성 제품들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 외에도 내의나 양말까지도 레이스 전용 제품이 있습니다. 이 역시도 드라이버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일차적인 목적입니다. 주로 서킷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드라이버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많습니다. 최초의 사고는 경주차에서 막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드라이버들도 별도의 안전 장구를 착용합니다. 레이스 도중 완파된 차에서 멀쩡하게 걸어 나오거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만약 이런 상황에서 안전장구가 없다면 이런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레이스를 포함한 모든 교통사고에서 무엇보다 가장 위험한 상황은 바로 화재인데요. 모든 드라이버 안전 장구들은 기본적으로 화재를 방어를 목적으로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완전하지는 못하죠. 대신 전 세계 모터스포츠를 관장하는 FIA에서는 매년 안전 장구에 대한 인증 기준을 업데이트하고 피해를 막기 위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증 번호



드라이버의 안전 장구는 헬멧, 발라클라바, 글러브, 슈즈, 수트, 한스, 방염내의 등으로 구분됩니다. 이는 아주 기본적인 안전 장구로 F1부터 동네 레이스에 이르기까지 모터스포츠에 참가하려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장구류입니다. 성능은 FIA에서 매년 인증하는데 유효기간과(제조일자) 등급 등을 장구류에 모두 표기하게 되어있습니다. 알 수 없는 암호 같지만 FIA 홈페이지에 가면 언제든 만료 기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전 장구의 소재는 대부분 불연성 소재인 노맥스를 사용하는데 사용 연한이 지정되어 있으므로 인증 만료 전에 교체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번거롭고 비용적인 부담이 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소재가 낡거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한 보험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헬멧



안전 장구 중에 가장 중요한 용품입니다. 기본적으로 헬멧은 운전자의 머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머리인 만큼 드라이버들이 가장 신경 쓰는 장구이기도 합니다. 인증 헬멧은 규격에 따른 강도 테스트를 마친 제품들입니다. 여기에 안감은 불연성 소재로 만들어져 있으며 개개인의 두상 사이즈에 맞게 피팅이 가능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드라이버 고유의 도색을 하기도 하며 가격은 40만원부터 300만원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겉감 소재는 알루미늄이나 듀랄루민, 카본 등을 사용합니다. 가격 대비로 봤을 때 가장 효율이 높은 장구이기도 합니다. 


간혹 바이크용 헬멧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는데 바이크용 헬멧과 자동차용 헬멧은 안감의 소재가 다릅니다. 바이크용 헬멧은 충격에 버티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자동차용 헬멧은 화재의 위험으로부터 버티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용도에 맞는 헬멧을 사용해야 합니다. 참고로 서킷 레이스에서 풀페이스 헬멧을 사용하고 오프로드나 랠리에서는 하프페이스 헬멧을 사용합니다. 



레이싱 수트



드라이버의 몸을 보호하는 수트는 위와 아래가 붙어 있는 오버롤타입 입니다. 어깨에는 견장이 붙어 있는데 용도는 드라이버가 차 안에서 의식을 잃었을 때 끌어내기 위해서 입니다. 기본적으로 불연성소재로 만들어지며 FIA에서는 300도 이상 온도에서 4분 이상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서킷에 있는 구난, 소방 팀이 도착하는 최대 시간에 그 기준을 둔다고 합니다. 어느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해도 최대 4분 안에 도착할 수 있어야 하다는 의미입니다. 수트는 드라이버 보호뿐 아니라 스폰서들의 광고판 역할도 합니다. FIA의 기준만 통과하면 디자인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또한 허리띠에는 드라이버의 이름과 혈액형을 함께 표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방염 내의 발라클라바



드라이버의 몸을 보호하는 장비입니다. 내의는 수트 안쪽에 속옷처럼 입고 발라클라바는 헬멧을 쓰기 전에 착용하는 두건과 비슷합니다. 두 가지 모두 소재는 불연성인 노맥스로 만들며 내의는 화제로 인한 드라이버의 신체 보호, 발라클라바는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를 일차적으로 걸러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의외로 레이스 도중 큰 사고, 특히 화재가 발생했을 때 가장 많은 피해 사례는 유독가스로 인한 호흡기의 손상입니다. 물론 화재 자체도 큰 문제입니다만, 그로 인한 2차 피해의 영향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슈즈, 글러브



슈즈와 글러브도 필수입니다. 그런데 슈즈와 글러브의 일차적인 용도는 드라이버의 신체 보호인데, 이 외에도 기능적인 면을 가장 많이 추가됩니다. 슈즈와 글러브는 모두 미끄럼 방지 설계로 만들어지는데 슈즈는 바닥 면이 얇고 뒤꿈치 부분이 보강되어 있습니다. 페달을 밟을 때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조치입니다. 소재는 주로 가죽과 노맥스를 사용합니다. 


글러브는 짧은 것부터 손목 위로 올라오는 것까지 사이즈가 다양합니다. 수트를 입고 글러브를 착용했을 때 피부가 노출되면 안 됩니다. 글러브는 가죽과 노맥스, 미끄럼방지를 위한 디자인 등 다양한 기능이 추가됩니다. 자동차 레이스용과 바이크 레이스용, 카트 레이스용이 구분되어 있으며, 봉제선이 바깥쪽으로 드러난 제품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카트 레이스용 글러브는 손등에 헬멧을 닦을 수 있는 가죽패드가 덧대어진 것들도 있습니다. 



한스(Head and Neck Support)



헬멧에 장착하는 한스는 외부 충격으로부터 드라이버의 목과 머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1980년대 영국의 로버트 허바드 박사가 개발한 한스는 지금까지 많은 드라이버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한스는 별도의 어깨 받침대를 사용해 받침대와 헬멧을 벨트로 이은 구조로 되어 있는데, 외부 충격으로 목이나 머리가 일정 거리 이상 튀어나가지 않게 도와주는 안전 장비입니다. 거추장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한스를 착용하면 같은 충격량에서 신체 손상도와 사망률이 80% 이상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F1의 아일톤 세나와 롤란트 라첸베르거, 나스카의 데일 언하트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드라이버들이 한스를 착용했다면 지금도 우리 곁에 있었을 겁니다. 비교적 속도가 느린 아마추어 레이스나 원메이크 레이스에서 한스는 권장 사항인 경우가 많지만 레이스 등급이 올라가면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대표적인 드라이버 안전 장구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자동차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더 빨라지고 레이스 역시 그에 따른 위험성이 당연히 높아졌습니다 서킷에서 볼 수 있는 경주차의 모습이 일반차들에 비해 복잡하고 불편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근골격은 강인함으로 상징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외부 충격에 약합니다. 미국의 존 홉킨스 의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두개골이 파열되기 시작하는 최초의 속력이 시속 30km부터 라고 하니 모터스포츠에서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안전 장구가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거기에 레이스라는 극한의 조건에서 인간의 신체는 그야말로 나약함 그 자체입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일반 도로 주행보다 레이스 상황에서 인사사고율이 현저히 낮다는 점인데 엄격한 안전 규정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구 상에서 가장 빠른 레이스라 불리는 F1에서는 1994년 이후 경기 중 사고로 인한 사망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을 정도입니다. 모터스포츠의 기본은 언제나 안전이며, 까다로운 안전 규정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경쟁은 소모적이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두가 까다로운 안전 장구를 다 갖출 필요는 없지만 안전은 언제나 운전자 자신부터 시작한다는 점을 언제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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