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경기가 펼쳐지는 순간, 레이스카를 선도하며 차량의 페이스를 조절하는 페이스카(Pace Car). 이 차량은 레이스 도중 사고 발생 시 차량과 레이서, 진행 요원들의 안전을 위한 임무를 맡기도 하므로 세이프티카로 불리기도 한다. 이 콘텐츠에서는, 안전한 레이스 진행과 자동차 제조사의 홍보 및 볼거리의 제공 등 복합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페이스카의 세계를 소개한다.

 

 

'페이스카'는 언제 처음 등장했을까

최초의 페이스카는 1911년에 첫 대회를 치른 인디애나폴리스 500(이하 ‘인디 500’)의 스토다드 데이톤(Stoddard Dayton)이다. 이 자동차는 1909년, 인디 500의 서킷이 될 모터스피드웨이에서 치러진 레이스의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스토다드 데이톤 페이스카의 초대 드라이버는 해당 경기장의 설계자이자 레이서이기도 했던 칼 G. 피셔였다.
 
이어서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자동차 레이스인 F1에 페이스카가 등장한 시기는 전체 자동차 레이스 역사에 비춰 보면 다소 늦은 시기였던 1973년이었다. 당시 대회는 캐나다 그랑프리로, 차량은 포르쉐의 914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페이스카의 운용 체계가 확립되어 있지 않았던 까닭에 많은 이들이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 F1에서 페이스카가 공식적으로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브라질 그랑프리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등장한 차량은 피아트의 콤팩트카인 템프라였다. 물론 1974년부터 1993년까지, F1에서 페이스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모나코 그랑프리에서는 람보르기니의 카운타크가 등장해 페이스카의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하는 등, 개별 그랑프리별로 페이스카를 운영하는 방식을 취했다. 오늘날처럼 특정 제조사가 시즌 전체를 책임지는 것은 1996년 메르세데스 벤츠와 FIA(국제자동차연맹)와의 파트너십 체결 이후의 일이었다.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페이스카

페이스카의 역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레이스의 출발을 알리는 차량으로서 페이스카의 존재감은 트랙에서 진행되는 레이스에서 좀 더 두드러진다. 레이스의 출발 방식은 그리드에 멈춰 있다가 출발하는 스탠딩 스타트와, 예비 주행 후 출발하는 롤링 스타트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여기서 스탠딩 스타트의 경우, 그리드걸이 대회 출발 전 시간을 알리는 알림판을 들고 페이스카 옆에 설 때 레이스를 향한 열기는 더욱 고조되며, 현장 포토그래퍼들의 셔터 소리도 빨라진다.

 

페이스타와 함께 레이스의 시작을 알리는 그리드걸

 

장거리의 오프로드를 질주하는 랠리의 페이스카는 트랙 중심 레이스의 페이스카와는 조금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대표적인 오프로드 경기인 WRC를 보면 대회 시작 전에 0, 00, 000 이라는 번호를 달고 있는 자동차들을 볼 수 있다. 이 자동차들은 차량 번호를 따 ‘제로카’라고 불리는데, 이 차량이 바로 WRC의 페이스카이다. WRC를 비롯한 다른 랠리의 페이스카도 이러한 0번, 00번의 번호를 달고 제로카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랠리에서 페이스카의 역할은 경기 전 코스를 주파하며 상태를 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자동차와 관중과의 거리는 중요 체크 사항인데, 이는 1980년대 포드 RS200 차량이 중심을 잃고 관객석으로 돌진한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항을 포함해, 코스 상 이상이 없다는 정보를 제로카가 대회 운영진 측에 전달하면, 선수들의 차량이 한 대씩 일정 간격을 두고 출발하게 된다.

 

 

 

첨단 기술 탑재한 이동식 콘트롤 센터

 

자동차 레이스에서 주된 신호체계는 깃발의 색상이지만, 깃발만으로 원활한 진행과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악천후나 심각한 사고로 경기장 내에 머신이 멈춰 있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레이스를 중단시킬 만큼의 위험 상황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고속 주행이 어렵다면, 페이스카가 코스에 진입해 전체 차량들의 속도를 떨어뜨려 연쇄 사고를 막는다.
 
이러한 까닭에 페이스카 추월은 대부분의 레이스에서 금지한다. 참고로 페이스카 추월 금지는, 롤링 스타트 시 예비 주행에서도 적용된다. 물론 악천후로 인해 레이서가 페이스카를 인지하지 못하는 실수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막기 위해 페이스카에는 시인성 제고를 위한 여러 가지 장비를 장착한다. 대표적인 것이 루프 경광등이다. F1을 비롯한 많은 대회의 페이스카 루프 경광등은 추월 금지를 의미하는 주황색과 추월 허용 및 대회 재개를 의미하는 초록색으로 구분한다. 대회에 따라서는 페이스카에 주황색이나 노란색 등 단색의 경광등만을 장착하고, 추월 허용은 초록색 깃발로 지시하기도 한다.

 

 

페이스카의 내부에는 레이스카에 못지 않은 안전 장비와 중계용 TV 카메라, 고성능 GPS, 컨트롤 타워와 연락 가능한 라디오 시스템 등 여러 첨단 장비가 탑재된다. 레이스 주최측은 라디오 시스템을 이용해 미리 페이스카의 등장을 레이서들에게 알린다. 그런데 오히려 이를 이용해 ‘꼼수’를 부리는 레이서들도 있다. 실제로 2010년 유럽 그랑프리에서, 루이스 해밀턴이 페이스카 상황에 관한 라디오 통신을 듣고 재빨리 한 바퀴를 더 주행하려 하다가 페이스카를 추월한 것으로 판명되어 페널티를 받은 바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루이스 해밀턴이 이 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페널티를 받은 후 다음 번 페이스카의 등장 때, 차간 간격이 좁아진 것을 추월에 활용한 덕분이었다.

 

 

 

모터쇼 출품차량 능가하는 페이스카

이처럼 높은 수준의 주목도 뿐만 아니라, 각종 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는 페이스카인만큼 각 모터스포츠와 자동차 제조사는 파트너십을 통해 상호 혜택을 교환해 왔다. 20년간 F1과 공식 파트너십 관계에 있는 메르세데스-벤츠가 대표적인 사례다. 1996년, C36AMG를 시초로, CLK55AMG, SLK55 AMG 등을 거쳐 현재의 메르세데스 AMG GT까지 자사의 고성능 차량들을 F1의 페이스카로 지원해 왔다. 그러나 그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 차량은 2010년 F1 코리아 그랑프리를 통해서도 선보인 SLS AMG다. 특히 이 차량은 2010년 코리아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우천과 안전문제로 전체 랩 중 1/3에 해당하는 17랩을 달리며 최고의 광고 효과를 누리기도 했다.

 

 

세계 3대 모터스포츠 대회이자 미국적 모터스포츠 대회로 꼽히는 인디 500의 페이스카는 미국 머슬카들의 차지다. 5.0리터 이상 배기량의 자연흡기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들이 단골이며, 쉐보레 카마로와 콜벳, 포드 머스탱 및 닷지 바이퍼 등이 대표적이다. 이 제조사들 역시 자사의 이미지와 대회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엠블럼과 디자인 등을 가미한 페이스카를 선보여오고 있다.

 

 

WRC의 제로카는 랠리카가 달리는 코스를 사전 점검하는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랠리카와 동일하게 롤케이지, 흙받이 등 안전과 관계되는 장비들을 장착한다. 2011년부터는 야간 스테이지가 신설되면서, 일부 차종에는 서치라이트 등을 장착하기도 했다. 20세기에는 포르쉐와 BMW 등 유럽 제조사가 페이스카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21세기에 들어오면서는 토요타, 스바루, 미쓰비시 등 일본 제조사들이 두각을 드러냈다.

 

 

페이스카 드라이버 역시 페이스카 못지않게 자동차 제조사를 돋보이게 하는 전략이다. 1991년에 인디애나폴리스 500의 페이스카인 닷지 바이퍼 GTS의 레이서로는 머스탱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캐롤 쉘비가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2016년 나스카 스프린트 컵에서는 영화 <벤허> 리메이크작의 주인공 잭 휴스턴이 페이스카의 레이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참고로 F1은 2000년 이후로 FIA가 지정한 공식 페이스카 레이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조수석에도 FIA의 옵저버가 탑승하는 등, 이벤트보다는 페이스카 본연의 임무를 중시하는 페이스카 운영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 모터스포츠와 신차 전략의 기수

아직 국내와 해외 모터스포츠 대회를 직접 비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점점 마니아들이 늘어나면서 국내 제조사는 물론, 국내 시판중인 해외 제조사들의 차량도 국내 모터스포츠에 페이스카를 제공하며,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례로, 2011년 코리아스피드페스티벌(KSF)이라는 명칭으로 첫 출범한 대회에서 페이스카로 등장한 벨로스터(자연흡기 기종)는 양산 차량과 차별화된 성능으로 그 당시에 출시되지 않았던 벨로스터 터보의 예고가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을 정도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제네시스 쿠페 역시 국내 각 모터스포츠 대회의 페이스카로 종종 등장한다. KSF의 제네시스쿠페 클래스는 물론, 넥센타이어 스피드레이싱 엔페라컵, 아마추어 대회인 핸즈모터스포츠 등에서도 종종 페이스카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제네시스 쿠페라는 기종이 그만큼 안정적인 성능을 발휘하는 차량으로 인식된다는 의미라고도 볼 수 있다.

 

 

 

미래는 현재가 된다, 현대자동차 콘셉트카

고출력의 상징, 자동차 브랜드의 고성능 디비전

터보 차저, 출력과 효율의 접점

 

 VIEW_H는 네이버 포스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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