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 쇼크 이전까지 자동차의 배기량은 부의 척도를 의미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미국은 오일 쇼크, 일본은 버블경제의 붕괴, 유럽은 배기가스 감축 등의 사안으로 자동차의 배기량을 줄이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세계의 각 자동차 제조사들이 성능을 유지하거나 높이면서도, 배기량을 낮추기 위해 진행해 온 연구와 고민의 흔적을 살펴본다. 또한 이 다운사이징의 성과 이면에 숨겨진 해결 과제도 함께 알아본다.



터보차저를 통한 다운사이징 전략의 선두, 독일 제조사


독일 제조사들은 가솔린과 디젤 엔진 공히, 과급기를 이용한 다운사이징에 앞장서고 있다. 과급기의 방식에는 배기가스의 유속으로 회전하는 터빈을 이용하는 터보차저와, 엔진의 구동력으로 작동하는 슈퍼차저 두 가지가 있다. 지난 세기까지, 두 종류의 과급기가 가진 목적은 공통적으로 최고 출력과 최대 토크의 수치 상승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1993년, 유로1로부터 시작된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는, 21세기 들어서부터 매우 까다로워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터보차저는 최고 출력과 최대 토크의 유지 및 상승 기조를 지키면서도 배기량을 줄이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독일 자동차들은 터보차저를 적용한 다운사이징 흐름의 선두에 서게 되었다.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제조사인 폭스바겐은 200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기존 2.0리터 가솔린 엔진을 대체하는 1.4리터(1,390cc) TSI 엔진을 선보이며 본격적인 다운사이징의 기조를 알렸다. 이 엔진은 작은 사이즈임에도 낮은 엔진 회전수에서 과급을 담당하는 슈퍼차저와 높은 엔진 회전수에서 과급을 맡는 터보차저를 동시에 장착해, 140~160hp의 최고 출력과 25kg∙m대의 최대 토크를 발휘할 수 있었다.

 

2010년대에는 이러한 흐름이 더욱 가시화되었다. BMW도 2012년부터, 많은 인기를 누려 온 3.0리터(2,996cc)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을 장착하던 328i에 2.0리터(1,997cc) 직렬 4기통 터보차저 엔진을 장착했다. 배기량은 1.0리터나 줄어들었지만, 최고 출력은 231hp에서 245hp로, 최대 토크는 27.6kg∙m에서 35.7kg∙m로 증가했다. 특히 최대 토크 영역을 1,250rpm까지 끌어내림으로써, 실질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엔진 회전영역에서 최대의 효율을 발휘하도록 했다. BMW 역시 성능의 강화를 위해 사용하던 터보차저를, 가장 대중적인 기종의 다운사이징을 위해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급 스포츠카 제조사인 포르쉐도 예외가 아니다. 2016년 상반기에 공개한 카이맨에, 2.0리터(1,988cc)와 2.5리터(2,497cc) 수평대향 4기통 가솔린 엔진을 장착해 다운사이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이전의 카이맨에 장착된 엔진 중 가장 배기량이 적었던 기종이 2.7리터(2,706cc)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 폭의 다운사이징이다. 그러나 최고 출력과 최대 토크는 2.0리터 엔진도 300hp와 38.7kg∙m를 기록하며 적은 배기량으로도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포르쉐 역시 고유의 터보차저 기술을 다운사이징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터보차저를 다운사이징의 핵심 전략으로 택한 독일 제조사의 자동차들은, 엔진회전수가 낮은 일상 주행영역에서 최대 토크를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는 데 장점이 있다. 이는 실생활에서의 연비를 크게 개선시켰는데, 유가가 높은 한국에서 독일 자동차들이 인기를 누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산업혁명 시기부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축적된 독일의 철강 및 소재 공학에 대한 기술에 그 공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제조사의 경우는 어떨까? 현대자동차는 현재 다운사이징 자체에 역점을 두고 있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제한된 배기량 안에서 최대의 퍼포먼스를 구현함으로써 간접적인 다운사이징 효과를 노리고 있다. 특히 준중형과 소형 차종에 2.0리터 이하 터보 엔진을 장착해 연비를 개선하고 배기가스를 줄이면서도, 드라이빙 퍼포먼스를 살리기 위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i30(PD)에는 1.4리터(1,353cc)의 가솔린 터보 엔진(카파 T-GDi)을 장착했다. i30의 경우 배기량은 적지만, 최고 출력이 138hp(6,000rpm), 최대 토크가 24.7kg∙m(1,500~3,200rpm)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역시 파리 기후협약 등 중요한 세계적 환경 이슈에서 빠질 수 없는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소형 엔진에 대한 연구는 좀 더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소형 엔진의 마스터, 일본 제조사


일본은 소형 엔진에 있어 세계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 특히 1.0리터 미만의 경량 터보 엔진들은, 혼다 N360을 비롯한 일본 자동차의 경형 엔진의 전통과, 세계 자동차 산업계의 미래를 이어주는 가교라 할 수 있다. 특히 다이하쓰의 659cc 3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 등은 경형 엔진의 트렌드를 이끄는 것으로도 평가받는다.

 

이와 더불어 다운사이징에 대해서도 일본 제조사들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진행 중이다. 토요타의 준중형 해치백인 오리스는 기존 라인업의 1.8리터 가솔린 엔진을 없애고, 대신 1.2리터 직렬 4기통 터보 엔진 기종을 추가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고(Aygo)와 같은 1.0리터 차량의 연구와 생산 역시 꾸준히 진행 중이다. 참고로 토요타의 1.0리터급 엔진들은 다이하쓰와의 협력을 통해 생산되고 있다.

 

일본 역시 유로 기준과 비슷한 수준의 배기가스 규제인 ‘포스트 신장기 규제’를 2009년에 도입했다. 하지만 도요타의 다운사이징 경향은 규제를 충족시키고도 한참 더 나아간 경향이 있다. 여기에 연비 또한 모터사이클에 육박할 정도다. 이는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장기 불황으로 인한 젊은이들의 자동차 구매 및 유지 여력 저하 등을 고려했다고 볼 수 있다. 이유를 막론하고, 소형에서 더 소형으로 진행 중인 일본 제조사들의 다운사이징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은 엔진의 가치에 눈뜬 미국 제조사


사실 미국 자동차 소비자와 제조사들은 고배기량의 자연흡기 엔진을 그 어느 나라보다 선호한다. 그러나 배기가스 규제와 함께 미국 제조사들 역시 다운사이징 흐름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 포드는 2010년대에 접어들어, 아시아와 유럽을 대상으로 한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 차량들을 공격적으로 내놓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차량이 지난 2012년 유럽에 선보인 소형 차량 포커스다. 1.0리터 직렬 3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을 장착한 이 자동차는, 적은 배기량이지만 최대 토크가 17kg∙m대에 달한다. 포커스의 2.0리터 엔진과 비교해도 불과 3kg∙m 모자란 수치다.

 

물론 미국 제조사들도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두 차례의 오일 쇼크를 겪으며, 연비 개선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 노력은 6.0리터급, 전장 5,000㎜ 이상의 대형 세단 라인업을 줄이는 정도였으며, 유럽이나 일본과 같은 고도의 다운사이징 전략을 채택하지 않았다. 우선 판매에 있어 가장 많은 비중을 하는 자국 소비자들이 원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실제로 지금도 미국의 유수 자동차 매체 관계자들과 제조사 연구자들은, 환경문제로 인한 다운사이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고배기량 자연흡기 엔진 고유의 주행감성에 대한 향수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다운사이징 성패를 가르는 몇 가지 키워드


그런데 꼭 고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에 대한 미련이 아니더라도, 다운사이징이 모든 문제의 만병 통치약인지에 대한 점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다운사이징 전략을 발전시키기 위한 몇 가지 과제이기도 하다.


우선 엔진 마운트의 안정성이다. 실린더 수와 배기량을 줄이는 대신 폭발력을 강화하는 터보 엔진들은 필연적으로 진동도 커진다. 마운트의 부품이 이를 강하게 고정시키게 되면 섀시로 전달되는 진동도 함께 커진다. 그러나 마운트가 유연해지면 섀시로 전달되는 진동은 줄어드는 대신 엔진 자체의 흔들림은 증가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터보 엔진의 다운사이징은 매우 정교한 마운트의 설계를 요구한다. 실제로 노후한 터보차저 장착 자동차들의 유저들은 차체의 심한 떨림을 호소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또한 최근 커먼레일과 같은 직분사 디젤엔진의 문제로만 여겨졌던 미세먼지 역시, 직분사 가솔린 터보엔진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제기되고 있다. 직분사는 다운사이징 엔진만의 특징은 아니지만, 다운사이징 엔진이 효율적으로 최고 출력과 최대 토크를 유지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술이다. 따라서 메르세데스 벤츠는 새로이 개발하는 차량에 PPF(Petro Particulate Filter, 가솔린 미세입자 포집 필터)를 장착하는 방안도 강구 중이다.



인류의 과학 기술 발전사를 보면, 문제 속에 해결책이 있고, 그 해결책이 다시 새로운 과제가 되는 일의 연속이었다. 환경 문제와 화석 연료 고갈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택한 엔진 다운사이징 역시 마찬가지로, 일정 부분 효율과 환경 문제에 있어 문제점을 노출하는 경우가 드러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은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성과의 관문이 될 수도 있고 실패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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