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기사나 한적한 고속도로에서는 가끔 흑백의 현란한 무늬로 덮인 위장 차량을 볼 수있다. 신차 개발과 관련하여 외형 윤곽이라든가 세부 디테일을 쉽게 알아차릴 수 없도록 한 기법이지만, 역으로 특이한 외관 덕분에 주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요즘은, 위장 필름을 두르는 것이 보안상의 이유가 아니라, 신차 공개 전의 ‘노이즈마케팅’이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자동차 생활에 있어 흥미로운 콘텐츠가 된 위장 필름의 속살을 살펴본다.



방해, 현혹 패턴을 이용한 카무플라주의 기원


자동차 위장 필름의 패턴은 카무플라주 패턴이라고도 한다. 이는 문자 그대로 위장을 위한 패턴을 의미한다. 현대의 여러 가지 산업 기술과 마찬가지로 카무플라주 패턴의 본격적인 발전 역시 크고 작은 전쟁을 통해 발전했다. 오늘날 사용되는 것과 같은 복합적 색채와 무늬를 이용한 방해(disruptive) 패턴이 본격적으로 채용된 된 것은 1차 세계대전 시기다. 이를 개발한 이는 당시 화가로 활동하다 전쟁 발발 후 프랑스 포병부대에 근무하던 작가 귀로 드 스케볼라와 유진 코르뱅이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색채의 무늬들을 포신 위에 어지럽게 배열하여, 공중에서 적들이 쉽게 포대를 찾지 못하도록 했다. 이 방해 패턴은 즉시 각 국가의 군사전문가들에 의해 수용되었는데, 영국 해군의 대위였던 노먼 윌킨슨은 색이 다른 무늬들의 불규칙적인 교차를 활용한 현혹(dazzling) 패턴을 자국의 군수 보급선에 적용하였다.


대표적 카무플라주 패턴


방해나 현혹 패턴을 이용한 카무플라주는, 그 범위를 넓게 본다면 좀 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기원 2~3세기경 로마의 문학 작품에는 배를 청색과 회색으로 위장한 해적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또한 그보다 더 이른 시기인 기원전 50년경,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 전쟁에서도 이와 같은 현혹 패턴을 활용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런 패턴을 이용한 카무플라주는 주변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동물의 보호색과도 비교되지만 이와는 약간 다른 원리를 갖고 있다. 카멜레온처럼 몸의 색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동물이 아니라면, 특정 환경에 맞춰진 무늬는 환경이 바뀌면 위장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혹패턴은 주변 환경이 바뀌어 눈에 띄더라도, 이를 식별하는 데 혼란을 주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이라는 전제를 두고 있다.


크기나 진행 방향을 인지하기 어렵게 현혹(dazzling)효과를 적용한 군함



매의 눈을 속여라! 카무플라주 패턴의 숨가쁜 변화


그렇다면 이러한 카무플라주 패턴은 어떻게 방해와 현혹 효과를 일으킬까? 사실 그 원리를 설명하는 사례는 매우 찾아보기 쉽다. 인간의 시지각 체계 및 뇌의 정보 처리 능력은 많은 간섭요소에 취약하다. 그래서 일어나는 현상이 착시다. 도형이나 선이 주변 정보에 따라 객관적 형태와는 다르게 지각되는 기하학적 착시, 한 색채가 주변 색채와의 관계 때문에 객관적 색채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색채 착시 등이 카무플라주의 전제가 된다.


다양한 패턴의 위장 필름


자동차의 카무플라주 패턴이 방해하거나 현혹시켜야 하는 대상은, 사람의 눈만이 아니라 카메라이기도 하다. 사실 자동차 회사의 신차 개발 보안 전략에 있어 가장 큰 과제는 각종 매체와의 숨바꼭질이다. 특히 갈수록 개선되는 광학 성능과 보정 프로그램 등, 이와 같은 ‘매의 눈’을 속이기 위해 각 제조사들은 카무플라주의 패턴을 다양하게 변화시켜 왔다.

 

카무플라주 패턴이 성공적으로 카메라를 속이기 위해 택하는 전략은, 흑백과 무광이다. 우선 흑백은 카메라의 자동초점 기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물론 가만히 서 있는 차량의 경우는 이를 원활히 촬영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그러나 고속으로 움직이고 있을 경우에는 렌즈의 자동 초점 기능이 순간적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고장은 아니지만, 적외선 추적으로 물체의 반사도 등을 인지하는 자동초점 기능은 흑백이 교차할 때 약간의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카메라의 성능과 카무플라주 패턴은 숨바꼭질 중이다


또한 카무플라주 패턴의 필름은 반드시 무광이어야 한다. 만약에 빛을 반사하는 재질이라면, 반사된 빛의 흐름에 의해 차체의 굴곡 형태 등을 파악하기 용이해지는데다, 카메라의 오토포커스 기능이 물체를 인식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까닭이다. 흑백의 복잡하고 불규칙적인 패턴들은 원래 차체의 굴곡진 면은 평평하게, 평평한 면은 일그러져 보이게 만드는 착시를 일으키는데, 빛은 이 현혹 의도를 오히려 무력화시켜버린다.


뒤에 늘어선 필름 중 우측 3가지가 반사되지 않는 위장 필름이다


그러나 최근 카메라의 기능은 날이 갈수록 개선되고 있다. 특히 니콘과 캐논, 라이카 등의 플래그십 기종이나 1억 화소대의 페이즈원 카메라 등은 카무플라주의 눈속임 전략을 집요하게 발가벗긴다. 비단 카메라의 성능뿐만 아니다. 경험 많은 포토그래퍼들의 눈썰미와 감각 또한 카무플라주 전략의 적이다. 특히 전세계 유수 자동차 전문 매체에 실리는 ‘스파이샷’ 대부분을 촬영하다시피 해온 포토그래퍼 브렌다 프리디는 “카무플라주는 내게 어떤 방해도 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은 훌륭한 포토제닉”이라 말해, 각 제조사 개발자들의 ‘뒷골’을 당기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자동차 제조사들도 이런 상황에 굴복하지 않는다. 포드와 같은 제조사는 최근 TV의 화이트노이즈 화면과도 비슷한 극단적 패턴을 선보여, 일반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 촬영으로부터도 형체를 숨길 수 있도록 고안했다. 이렇듯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로 인해 제조사의 위장 기술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는 셈이다.


랩핑 분야 전문가들이 정밀하게 시공하는 위장 필름



위장 필름이 붙어 있는 모양으로 풀 체인지와 페이스리프트 구분한다


고속도로 등에서 만나는 위장 차량들을 보면, 전체가 카무플라주 패턴으로 덮여 있는 차량과 일부만이 덮여 있는 차량, 절반만 덮여 있는 차량 등으로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각각 신차 및 풀 체인지 차량, 그리고 부분변경 차량의 차이다. 즉 위장은 필요한 부분만큼한 하는 셈이다. 특히 부분변경 차량의 경우는 오히려 노출되어 있는 다른 부분과의 시각적 차이로 인해, 변경될 부분의 은닉과 왜곡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풀체인지를 앞둔 차량이거나 신차일수록 전체를 위장한다


제조사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위장 차량의 노출이 노이즈마케팅 기법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는 앞서 예로 든 포토그래퍼 브렌다 프리디의 지적과도 맥이 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 자동차 제조사들의 많은 정보가 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노출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신차출시, 풀 체인지, 페이스리프트 등의 시기와 맞물려 등장하는 ‘스파이샷’은 오히려 큰 홍보효과가 된다. 게다가 군사 기술에서의 위장에는 은닉과 왜곡뿐만 아니라 과시적 목적도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위장 차량이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은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잠깐! 자동차 위장, 드레스업으로도 가능할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자동차의 외관 튜닝인 드레스업이 점점 인기를 얻어가는 가운데, 카무플라주 필름 역시 자동차의 개성 표현을 위한 수단으로 쓸 수 있을까? 국토부, 국방부 등 각 기관 등과 협의했던 국내의 한 전문가에게 물어보았다.

 

우선 밀리터리 계열의 카무플라주 패턴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현재나 과거에 한국군이 채택한 색상이나 무늬는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국방부의 답변이라고 한다. 해외 랩핑 필름 전문 제조사의 인스타그램 등을 보면 밀리터리 타입의 랩핑을 시공한 자동차도 등장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시기상조인 것이다.

 

그렇다면 각 제조사들이 차량 개발 과정의 보안을 위해 채택하는 카무플라주 패턴은? 현재로서는 운전자가 자신의 개성을 위해 이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규제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 국토부 등 관계기관의 입장이다.

   

카무플라주 패턴은 개성 표현의 합법적 수단이지만 한국에서 밀리터리 패턴은 규제에 저촉될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 산업은, 완성차는 물론이지만 그 개발 과정에 관련되는 여러 분야의 기술 역시 현대인들의 삶에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위장 차량은 자동차 마니아들뿐만 아니라 일반 운전자들에게도 우선 흥미로운 볼거리임에 틀림없다. 매체 관계자들에게 위장 차량은 정체를 파악해야 할 대상이고, 자동차 제조사와 디자인 담당자들에게는 꼭꼭 숨기면서도 은근슬쩍 노출해야 할 것이다. 관련된 학문도 시지각 등을 다루는 심리학과 소재공학 등 다양한 분야다. 어쩌면 위장 필름의 복잡한 무늬에 담긴 의미는 자동차를 둘러싼 현대 산업사회의 복잡한 관계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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