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I 유정열(여행작가)



‘남도 답사의 일번지’. 유홍준 교수는 강진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 말에는 지리적 환경과 그곳에 기대어 살아간 사람들, 그들이 남긴 흔적들이 으뜸이라는 뜻입니다. 그의 말처럼 강진에는 18년간 유배 중에도 500여 권이 넘는 책을 지은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데요. 백운동별서정원과 사의재, 백련사와 다산초당 등이 대표적인 답사지입니다. 답사지에는 켜켜이 쌓인 다산의 고독과 집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을 만나러 여행을 시작하겠습니다.



월출산 아래 시크릿가든, 백운동별서정원


[숲속의 다산초당, 이곳에서 다산은 목민심서를 지었다]


달이 나는 산, 월출산 남쪽 자락에 강진 다원이 있습니다. 태평양에서 직접 운영하는 다원입니다. 언덕을 따라 푸른 융단처럼 펼쳐진 차밭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시원해집니다. 이 차밭 사이에 백운동별서정원이 숨어 있습니다. 이곳은 이끼 무성한 계곡과 나무들 때문에 낮에도 컴컴할 정도입니다. 숲 밖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비밀 정원이죠.


[강진다원의 차는 일교차가 커서 떫은 맛이 덜하다고 한다]


[월출산 강진다원 전망대에서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차밭이다]


백운동 별서정원의 주인은 강진의 선비 이담로입니다. 나이가 들어 둘째 손자 이언길을 데리고 들어와 살았던 생활공간입니다. 고려 때 백운암이 있었던 곳에 지어진 것으로 조선시대 전통 원림의 원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백운동이란 ‘깨끗하고 고요해 구름처럼 높은 곳에 있다.’는 뜻입니다.


[백운동 계곡을 따라 동백나무 숲을 지나면 별서정원이다]


1812년 다산은 제자들을 이끌고 월출산으로 산행을 갔다가 막내 제자였던 이시현 집안의 별서인 이곳에 방문합니다. 다산은 백운동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백운동 12경’이라는 시를 짓고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별서와 다산초당을 그리게 했는데요. 그것이 바로 ‘백운첩(白雲帖)’입니다. 


[백운 11경인 정선대에서 바라본 백운동별서정원]


빼어난 주변 풍경보다 건물은 간소합니다. 별서 마당에는 술잔을 띄울 수 있도록 한 물길, 유상곡수가 있습니다. 흘러내린 물을 정원 마당으로 끌어와 한 바퀴 돌아가도록 설계한 것으로 경주 포석정과 비슷합니다. 민간 정원에 유상곡수가 남아 있는 곳은 이곳뿐입니다.


    [이담로가 새긴 백운동 암각과 백운 5경인 유상곡수]


 [단풍 아래 바위 뒤로 별서정원의 입구가 보인다]


백운동 별서정원은 차 문화의 산실로 꼽힙니다. 이곳에서 차와 관련한 다산의 편지, 이덕리가 지은 한국 최초의 차 전문 책인 ‘동다기’ 등이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차에 대해 조예가 깊었던 다산이 당시 백운동별서의 주인이었던 제자 이시헌에게 떡차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었고 또한 즐겨 마셨다고 합니다.

백운동별서에서 월남사지로 향하면 다향산방과 우리나라 최초의 녹차 상표인 ‘백운옥판차’를 만든 이한영 선생의 생가가 있습니다. 이한영선생은 이담로 선생의 10대손입니다. 강진이 차 문화를 꽃 피웠던 곳으로 이름나게 된 것도 이한영 선생의 노력이 한몫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국산 차의 제조기법과 제다의 명맥을 이어왔던 것이죠.


 

[월출산이 품은 듯한 이한영 선생의 생가, 2010년에 복원되었다]


생가 옆에 다향산방이 있어 백운옥판차를 마실 수 있습니다. 처음 부드러운 맛은 마실수록 깊은 향이 느껴집니다. 월출산을 배경으로 따스한 햇볕 아래 마시면 몸도 마음도 가뿐해집니다.


[월출산 다향산방과 두 번째 우린 백운옥판차]



주모의 따뜻한 보살핌이 남아 있는 곳, 사의재


다산이 월출산의 누릿재를 넘어와 강진에서 처음 머문 곳이 동문 밖 주막인 ‘동문반매재’입니다. 그는 주막 골방에 머물며 사의재(四宜齋)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사의재란’ 생각, 용모, 말, 행동’ 등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유배 온 몸이지만 선비의 꼿꼿한 마음이 엿보이는 이름입니다. 


[복원된 동문반매재, 오른쪽 끝 방이 다산이 머문 사의재이다]


당대 석학이자 정조대왕의 신임을 듬뿍 받았던 다산은 1801년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되었습니다. ‘황사영 백서사건’이란, 다산의 형인 정약전의 사위 황사영이 조선의 천주교 탄압 사건을 청나라 주교에게 고하고 도움을 바라는 편지를 보낸 사건입니다. 이 일로 형 정약종과 형수, 매형인 이승훈과 조카 2명, 조카사위 황사영이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과 형 정약전은 공범으로 지목돼 유배를 떠나게 된 것입니다.

다산이 처음 강진에 왔을 때는 아무도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대역 죄인의 몸이니 누구 하나 거처를 내주지 않았던 것이죠. 그러나 주막의 주모는 달랐습니다. 주모와 주모의 외동딸은 다산을 지극히 보살피며 실의에 차있던 다산이 마음을 다잡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 결과 다산은 사의재에서 6명의 제자를 가르치고 ‘경세유표’를 집필하며 4년을 보내게 됩니다. 현실에서는 죄인이지만 후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자 쓰고 또 쓰는 삶을 이어갑니다. 

사의재는 2007년 고증을 걸쳐 복원한 곳입니다. 마을 샘터 옆에 주막을 재현하고 그 주변에 한옥 체험관을 조성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가지며 다산이 좋아했다는 아욱국도 맛볼 수 있습니다. 


     [사의재 한옥체험관에 있는 주모와 외동딸상]



동백숲으로 둘러싸인 천 년 고찰, 백련사


사의재를 나와 찾아간 곳은 만덕산 백련사입니다.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무염 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라고는 하나 확실치는 않습니다. 고려시대에 원묘국사 요세 스님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고 왜구의 침략 등으로 쇠락했는데요. 조선 세종 때 재건되었지만 영조 때 큰 화재로 대부분의 전각이 불타버렸습니다. 지금의 전각들은 그 후에 중창된 것입니다.


[백련사 대표 전각인 만경루와 우람한 배롱나무]


웅장한 만경루를 지나면 정면에 대웅보전이 우뚝 서 있는데요. 조선의 명필이자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가 쓴 현판이 크게 들어 옵니다. 구불구불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그의 글씨체만으로도 백련사 구경은 쏠쏠합니다. 만경루 현판 글씨도 이광사의 것입니다.


    [백련사 대웅보전의 현판(좌)과 만경루 현판(우)]


백련사 사적비도 눈길을 끄는데요. 특이한 것은 비석은 조선 숙종 때 것이지만 아래위의 돌거북과 머릿돌은 고려 시대 것입니다. 비석은 원래 고려의 문필가 최자가 비문을 지은 원묘국사의 부도비였지만 비신이 훼손되어 남아 있던 것을 지금의 사적비로 재사용된 것이죠. 

 

[조선시대와 고려시대가 결합된 보물 제1396호, 백련사 사적비]


백련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동백숲입니다. 사찰 주변으로 1,500여 그루의 동백숲은 굵고 우람한 탓에 빛이 스며들지 않아 침침할 정도입니다. 나무 사이로 부도 네 기가 흩어져 있는데요. 이 동백숲은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습니다.  


[백련사 동백숲에 놓인 부도비들, 오랜 숲과 더불어 신비롭다]


백련사는 조선 시대에 8명의 대사가 배출될 만큼 유서 깊은 사찰이었습니다. 그 중 혜장선사는 대둔사 12대 강사로 꼽힐 만큼 공력이 높은 분이었는데요. 다산초당에 기거하던 정약용과 교분을 나눈 사이기도 합니다. 그는 사의재에 머물던 다산을 보우산방에 지내도록 배려하기도 했습니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숲길이 나 있습니다. 이 길을 통해 다산과 혜장은 같이 차를 나누어 마시며 학문을 논하는 등 우의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숲길은 약 2.5km로 산책하기 좋습니다.


[나뭇가지로 채워 놓은 문고리와 아기자기함을 더하는 단풍]



목민심서를 완성한 다산초당


백련사에서 해남 방면으로 가면 다산초당입니다. 만덕리 마을 길을 따라 올라가면 초당으로 이어지는 숲길이 시작됩니다. 조릿대와 삼나무가 우거진 조붓한 길에는 거목들이 뿌리를 드러내고 있는데요. 마치 고단한 생을 살아온 다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조금 가쁜 숨을 쉬게 되는 다산초당으로 향한 길]


걸은 지 5분 정도 지났을까, 볕이 잘 드는 곳에 초당이 나타납니다. 다산초당은 1957년에 복원한 것입니다. 초당(草堂)이 아닌 기와를 얹어 와당(瓦堂)이 된 초당, 내심 초가였다면 당시 다산의 삶을 이해하는 데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뜰 앞에 서면 추사 김정희가 쓴 다산초당(茶山艸堂) 현판이 보이고 그 안에 다산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해 지기 전에 가야 볼 수 있는 초당 안에 다산의 영정]


다산초당에는 다산 4경이 있습니다. 다산이 직접 가꾼 연못인 연지석가산과 다산이 찻물로 썼던 옹달샘인 약천, 그리고 다산이 차를 끓였다는 넓은 바위인 ‘다조’와 다산이 바위에 직접 새긴 ‘정석(丁石)’입니다. 정약용의 돌이란 뜻의 정석은 어떤 수식도 없이 단순합니다. 꾸미지 않는 다산의 면모를 알 수 있습니다.


     [다산이 직접 새긴 정석 암각과 차를 끓였던 다조바위]


다산은 오랜 유배 기간 동안 방대한 저작물을 남겼습니다. 분야도 다양한데요. 경학과 예학, 역사, 교육, 정치, 행정, 과학, 건축, 문학 등 전반에 걸쳐 무려 182책 503권을 저술했습니다. 한 사람이 베껴 쓰기만 해도 족히 10년은 걸리는 분량이라고 하니 정말 대단합니다.

요즘처럼 컴퓨터도 도서관도 없었던 시대에 이뤄낸 것이어서 더욱 불가사의하게 느껴집니다. 책을 쓸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타고난 성실성과 불굴의 집념이었습니다. 과골삼천(踝骨三穿), 즉 복사뼈를 방바닥에서 떼지 않아 세 번이나 구멍이 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2012년 유네스코는 헤르만 헤세, 루소, 드뷔시와 함께 다산을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했습니다. 그는 민본(民本)을 중시했습니다. 다산은 방대한 저술도 조선을 개혁하고 백성이 잘사는 나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의 가르침은 유효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탐조 여행지로 새로이 주목받는 강진의 갈대밭과 강진의 유일한 유인도인 가우도 트레킹, 그리고 일몰이 아름다운 고바우 전망대를 소개하겠습니다.


[이곳에 동백나무가 많은 이유는 불에 잘 타지 않아서라고 한다]



강진에서 맛보는 별미


대통령밥상

강진 오감통시장 안에 있는 식당입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즐겨 먹었다는 음식을 내오는 곳입니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전복비빔밥이 있는데요. 참기름으로 비벼 고소하고 담백합니다. 강진의 별미인 짱뚱어탕도 괜찮습니다. 

▶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 186-43, 061-433-3959 


 

    [오감통시장 안 대통령밥상의 전복비빔밥과 짱뚱어탕]

해태식당

강진은 한정식으로 유명합니다. 강진의 산, 들, 강, 바다에서 난 재료들이 밥상을 채우는데요. 가격이 다소 비싼 편이지만 강진의 맛을 골고루 맛 볼 수 있습니다. 회와 산낙지, 전복을 비롯해 돼지불고기, 육회, 홍어삼합, 꼬막 등 제철 음식이 한 상 가득 나옵니다. 

▶ 강진군 강진읍 서성안길 6(남성리 33), 061-434-2486 


[해태식당의 2인상 한정식의 상차림]



여행정보


▶ 강진다원: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1192-6

▶ 다향산방: 강진군 성전면 백운로 107(월남리 817-1), 061-434-4995

▶ 백운동별서정원 주차장: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1216-15

▶ 사의재: 강진군 강진읍 사의재길 27(동성리 495-1), 061-433-3223 

▶ 백련사: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만덕리 246), 061-432-0837 

▶ 다산초당: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길 68(만덕리 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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