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소비자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은 ‘최고’라는 가치만을 고수할 수 없다. 따라서 결국 타깃 소비자의 특성과 시대적 흐름, 산업적 상황을 모두 고려한 ‘최선’을 생각해야 한다. 그랜저가 1986년 이래 30년간이나 인기를 이어온 까닭은 이 최선의 가치를 첨단적으로 지켜온 까닭일 것이다. 그래서 그랜저의 디자인이야말로 고민이 담겨 있는 철학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랜저의 디자인, 현재를 이야기하다


자동차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자동차의 디자인은 공공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IG에 이르기까지 역대 그랜저들의 디자인 변화는, 한국의 생활문화사 변화를 담는 하나의 스토리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미쓰비시의 데보네어에 기반한 1세대 그랜저의 직선 중심 디자인은,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중시하는 산업적 가치의 첨단과도 통하는 한편, 권위의 감각을 상징하기도 했다. 이는 1986년, 고도성장기의 정점을 향해 가고 있던 한국의 플래그십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1992년에 등장한 2세대 그랜저의 디자인은1세대 그랜저의 무게감은 살리되 각진 모서리들을 부드럽게 처리했다. 이는 권위주의에서 문민 중심으로 옮겨 간 사회적 분위기와도 일맥상통했다.

   

1, 2세대 그랜저


1998년 등장한 3세대 그랜저 XG부터는 G로 끝나는 개발 코드명을 갖게 됐다. 그랜저 XG의 디자인은 미쓰비시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이는 당시 외환위기 이후 국제 구제금융 한파를 겪고 있었던 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해볼 때 더욱 의미가 있었던 부분이었다. 1, 2세대와는 확연히 차이를 보이는 섀시의 흐름 등은 현재의 그랜저로 이어지는 새로운 전통의 시작이기도 했다.

 

2005년에 등장한 4세대 그랜저 TG는 기존 그랜저의 수요 연령대를 한층 끌어내린 기종으로 기억된다. 특히 2000년대부터 재기와 젊은 열정으로 성공한 CEO들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또 그러한 캐릭터가 대중문화 콘텐츠의 주인공으로 자리잡으면서, 그랜저는 젊은이들의 거리로 뛰어들었다.


또한 2011년에 등장한 5세대 그랜저 HG는 전세대의 고객을 아우르는 준대형 세단의 상징다운 디자인을 보여 주었다. 국민 세단으로 자리잡은 YF 쏘나타와 후륜 구동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와의 가교 역할을 하는 차량답게, 포용력 높은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랜저 XG, TG, HG



신형 그랜저의 디자인, 제약 속의 창조


그렇다면 지난 주 모습을 드러낸 신형 그랜저 IG는 어떤 시대상을 반영하였을까? 그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강남구에 위치한 현대모터스튜디오를 찾았다. 이 곳 3~5층에서는 <그랜저 디자인 스토리> 전시를 진행 중이었다. 관람객들은 각 층마다 엔진 등급과 외관 및 인테리어 컬러의 조합에 따라, 그랜저 IG의 다양한 실물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5층에서는 그랜저 IG의 클레이 모델 및 렌더링 스케치 이미지, 4층에서는 세계적인 명성의 현대자동차 디자이너들과 관련된 콘텐츠들도 만날 수 있다.

 

이와 같은 플로어 플랜은 그랜저 IG의 디자인, 그리고 그것을 디자인하는 일이 현대자동차와 한국 자동차 산업에서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갖는 일인지를 말해준다. 보다 큰 배기량과 더욱 여유로운 차체, 후륜 및 4륜 구동의 레이아웃이 만들어내는 날카로운 주행 감각, 더 진보적인 디자인 등을 때로는 심각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제약 없는 창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랜저는 그 성격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국내 전륜 구동 세단 중에서 최고의 위치, 합리적으로 성공한 중산층의 상징, 그리고 30년 이상의 장수 기종. 이런 정체성들이 오히려 디자이너에게는 까다로운 제약 조건으로 작용한다. 특히 IG는 이 조건들이 구축하는 기본적인 개념을 해치지 않으면서도,세대가 교체되는 풀 체인지인 만큼 새로운 면모를 담아내야만 했다. 


이렇듯 IG는 6세대 까지 이어져 온 그랜저의 헤리티지와 함께 새로운 그랜저를 만들어내기 위한 수많은 시도들의 산물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랜저 IG 디자인의 초기 단계부터 최종 단계까지 관여한 피터 슈라이어 현대기아디자인센터 총괄 사장은 이 차에 대해 "'모두를 위한 차'가 되어 '대단하다'는 감동을 함께 느꼈으면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강남 현대모터스튜디오에 전시된 그랜저 IG

 


고객들이 원하는 그랜저의 이미지와 가치는?


실제로 출시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랜저 IG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곧 앞으로의 그랜저가 유지할 포지셔닝이기도 하다. 그랜저 IG를 보기 위해 현대모터스튜디오를 찾는 이들은, 이런 가치가 외관과 실내 모두에 반영이 되어 있는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평일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찾는 방문자들의 연령과 라이프스타일도 다양했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이나 중장년층 부부처럼 가족 중심의 자동차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또한 자동차 선호 타입에 있어서도 과거부터 그랜저를 고집해 온 이들부터 수입 세단을 소유한 이들까지 다양했다.


다양한 연령과 라이프스타일의 소비자들이 그랜저 IG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실 그랜저가 2만 7,000여 대의 사전 계약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아직 거리에서 직접 만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현장에서 그랜저 IG의 실물을 접한 관람객들은 매체를 통해서만 보던 IG의 실물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감상하는 분위기였다. 같은 FF(프론트십 엔진-전륜 구동) 레이아웃 그랜저 HG와 달리 보다 긴 비례를 가진 후드 디자인, 그리고 유연한 선의 흐름이 새롭다는 평이었다. 특히 캐스캐이딩 그릴 위에 기존 대비 1.5배 가까이 커진 엠블럼에 주목하는 이들이 많았다. 엠블럼 위로 커버가 덮여 있는 것도 시선을 끄는 요소였는데, 이는 레이더를 로고 안으로 숨겨 그릴라인을 깔끔하게 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존 대비 1.5배 커지고 레이더 전체를 커버로 덮인 새로운 엠블럼


외관은 어떠했을까? 현장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외장 컬러 면에서는 판테라 그레이 컬러가 높은 관심을 끌고 있었다고 한다. 판테라는 스페인어로 표범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판테라 그레이는 표범의 촘촘하고 매끈한 털이 빛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메탈릭 안료로 구현한 컬러라고 볼 수 있었다. '고급 세단은 블랙'이라는 공식으로부터 변화를 바라는 시장의 목소리에 부응한 컬러 전략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독특하면서도 관심을 끌어내는 판테라 그레이 컬러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랜저에 기대하는 것은 인테리어다. 실제 운전자라면 오랜 시간을 차 내부에서 보내는 만큼 안락함을 고려한 디자인은 필수적이다. 그랜저 IG의 인테리어는 안락감과 편의성을 중시하면서도 간결함을 내세운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었다.



현장에 전시되어 있는 그랜저 IG 중 일부는 선택사양으로 적용할 수 있는 프라임 나파 가죽 시트가 적용되어 있다. 나파는 가죽 공법의 하나로, 가죽을 부드럽게 무두질하여 실크와 같은 감촉을 주는 가공법이다. 유명 패션 브랜드의 핸드백에 적용되는 기법이기도 하며, 선택사양에 따라 스티어링휠의 혼 커버까지 적용할 수 있다. 가죽 시트는 베이지 투톤, 카멜과 네이비 투톤 등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이는 더 나은 착좌감과 더불어 그립감을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더 나은 현재를 위한 노력의 필요성


현장 매니저에 따르면, 최근의 소비자들은 매니저만큼 자동차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현장에서 직접 접하기 어려운 파워트레인에 대한 부분도 자세하게 파악하고 특히, 8단 자동 변속기가 장착된 3.0리터 엔진 모델에 많은 문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출력은 강하지만 구동계통으로의 전달이 부드러운 주행이 실제 가능한 지에 대해서도 많은 궁금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디자인에 대해서도 수입제조사 자동차들의 증가로 인해 한층 높아진 안목을 바탕으로 국내 제조사에도 같은 가치를 요구하고 있다. 전륜 구동 차량이면서도 늘씬한 보닛의 비례를 원하고, 합리적인 가격 안에서 최고급의 인테리어로 만족스러운 승차 감성을 갖출 것. 그랜저 IG가 부응해야만 했던 목소리는 이렇게 일견 모순되는 듯하면서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다양한 욕망에 근원을 두고 있다.

   

클레이 모델. 빛을 반사하는 면을 살펴보기 위해 절반에는 필름을 부착해두었다

 



많은 디자이너들의 구상이 담긴 그랜저 콘셉트 카


현장에서 실차로 바라본 그랜저 IG의 성능과 디자인은 이전 세대 그랜저들에 이어져 온 흐름을 잇되, 역시 선배 그랜저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하고자 하는 노력이 보였다. 물론 그것이 모든 소비자들에게 만족을 제공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점에서 이번 신형 그랜저 IG의 디자인은 ‘완성’이 아니라, 또 다른 현재, 또 다른 세대의 그랜저를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동력원과, 운전의 주체 등 모든 면에서 격변하고 있다. 어쩌면 그랜저 IG의 디자인은 자동차 산업이 맞이한 파도의 가장 높은 곳으로 밀려올라간 이들이 먼저 본 미래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특별한 이들을 위한 특별한 자동차


자동차 설계와 디자인의 키워드,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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