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지역에 갔을 때, 식당 선택이 고민이라면 기사식당을 선택하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운수업 종사자들의 미각이 까다로운 까닭이다. 특히, 아침식사를 챙길 수 없는 새벽 근무자들은 절대적으로 음식의 맛을 중시한다고 한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기사님’들만이 아닌 맛집의 일반명사로 자리잡은 ‘기사식당’에 대해 알아본다. 참고로, 여기서는 서울 각 지역의 대표적인 기사식당 및 주요 메뉴를 다룬다.



허기 자극하는 불내음, 돼지불고기 백반


기사식당 하면 빠질 수 없는 메뉴가 바로 ‘돼지불백’이다. 이는 돼지고기 불고기를 주 반찬으로 한 백반의 줄임말로, 기사식당의 상징적인 메뉴와도 같다. 원조가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분분하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성북동 원조설이다. 기사식당 골목이 형성되는 입지 조건은 몇 가지가 있는데, 번화가처럼 걸어다니는 유동인구가 많지 않고 한적하며 임대료가 싼 곳이다. 지금의 성북동이야 그렇지 않지만, 1970년대 성북동의 건물 임대료는 매우 저렴한 편이었다고 한다. 물론 성북동 하면 생각나는 부촌도 자리잡기 시작했지만, 부유층들은 외식을 해도 끼니를 이곳에서 해결하지 않고 번화가로 나갔다. 따라서 성북동은 일반적인 음식점이나 가게를 하기에 ‘목’이 좋은 자리는 아니었다.


기사식당의 발원지로 알려진 성북동의 한 식당


하지만 이런 입지는 기사식당에 있어서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인적이 드문 덕분에 기사들은 주차가 수월했고, 가게 주인들은 임대료가 싼 대신 음식을 푸짐하게 낼 수 있었다. 최근 ‘연트럴파크’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는 연남동이나 성수동 등에 기사식당이 자리잡은 것도 이러한 까닭이었다. 특히, 다른 고기에 비해 저렴한 돼지고기는 체력을 보충하는 데는 최고의 반찬이었다. 별다른 양념 없이 간단한 밑간만 해서 연탄에 구워 내는 ‘연탄불백’은 전국 기사식당으로 퍼져나갔다. 유명한 시 ‘성북동 비둘기’에 나오던 비둘기는 채석장 온기에 입을 닦았고, 기사들은 허한 몸을 연탄불백으로 데웠던 것이다.


‘연트럴파크’ 연남동의 한 기사식당. 연남지구대 사거리에서 동교동 방향으로 이어진 길도 오래 된 기사식당 골목이다


기사식당은 일반적인 식당에 비해 음식의 간이 좀 더 강한 편이다. 아무래도 장시간 운전으로 피로가 쌓이면 미각이 무뎌지는 기사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양념불백’은 이러한 면을 잘 드러내는 메뉴로, 고추장을 주로 한 양념 돼지불고기를 주 반찬으로 한다.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연탄불백과 함께 기사식당 돼지고기 요리의 쌍벽이라 할만하다.


연탄불백과 양념불백. 기사식당 메뉴의 쌍벽이라 할 수 있다



본질에 집중한 기사식당 돈가스


기사식당 메뉴 중에서 또 한가지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돈가스다. 돼지를 뜻하는 ‘돈’에 커틀릿의 일본식 발음인 ‘카츠’를 붙인 이 말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부를 상징하는 메뉴였다. 지금이야 간단히 집에서도 해먹을 수 있는 메뉴지만, 당시엔 ‘경양식’ 가게라는 특이한 형태의 식당도 있었다.

 

그러나 기사식당 돈가스는 식당의 분위기 등 음식 외적인 부분 대신 본질에만 집중한 돈가스다. 성북동을 비롯해, 남산, 강남 등 기사식당 거리에서는 ‘가성비’ 좋은 돈가스집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기사들은 단골을 정하면 잘 바꾸지 않지만, 단골로 만들기도 까다로운 고객이므로, 무엇보다도 고기의 질과 양에 집중한 것이 기사식당 돈가스의 특징이다. 가게에 따라서는 풋고추와 된장, 반찬 등 지극히 한국적인 반찬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기사식당 돈가스는, 운수업 종사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운전자들은 물론, 일반적인 식생활 문화에 있어 중요한 메뉴로 자리잡았다.


성북동의 한 돈가스집. 이곳은 서울의 숨겨진 맛집 거리로 주차가 편리하다.

인근에는 문학가 이태준 가옥 등 볼거리도 많아 자동차로 서울 투어를 하는 이들에게 좋은 곳이기도 하다



시원한 기사식당 탕류, 혼밥족도 대환영


추위로 인해 몸도 입맛도 얼어붙거나, 전날 과음으로 인해 속이 쓰린 날이면 시원한 국물이 생각난다. 기사들이라고 언제나 고기만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포슬포슬한 흰살 생선의 담백함과 칼칼한 국물이 어우러진 동태나 대구탕, 짭조름한 알과 쑥갓나물 향이 어우러진 알탕 등도 기사식당의 인기 메뉴다.

 

기사식당의 탕류는 사실 혼자라면 먹기 쉽지 않은 메뉴다. 버너 위에서 끓이며 먹는 게 제 맛인데 일반적인 식당에서는 2인분 이상을 시키지 않는다면 눈치 보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기사식당은 그런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특히, 개인 택시 기사들이야말로 ‘혼밥족’의 원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찌개나 탕을 전문으로 하는 기사식당들에는 1인이 먹기 알맞은 양을 담을 수 있는 냄비가 준비되어 있다. 점심시간, 나만을 위한 한 그릇의 국물이 필요하다면 기사식당이 답이 되어 줄 것이다.


혼밥족도 환영하는 기사식당과 보글보글 대구탕



면발이 그리운 날엔 ‘빕 구르망’을 살펴보자


운전을 하다 보면 어쩐지 밥 대신 후루룩 넘어가는 면발이 그리운 날이 있다. 이럴 땐 미쉐린 가이드의 번외 보급편이라 할 수 있는 ‘빕 구르망(Bib Gourmand)’에서 소문난 면집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빕’은 책, 성서 등을 가리키며 ‘구르망’은 식도락을 의미한다. 빕 구르망의 선정 기준은 미쉐린 가이드와 달리 1인당 3만 5,000원까지의 합리적 가격으로 훌륭한 맛과 분위기를 선사하는 곳이 기준이다.

 

미쉐린 가이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비벤덤’이라는 캐릭터로 유명한 프랑스의 타이어 제조사 미쉐린이 1900년 발행한 식도락 가이드다. 미식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미슐랭이라는 프랑스 식 발음이 익숙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가이드는 처음 프랑스의 고속도로 여행자들을 위해 만든 가이드로, 애초에 기사식당 가이드였던 셈이다. 현재 20여 개국 이상에서 발행되고 있으며, 지난 11월에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이 발간기도 했다. 미쉐린 가이드는 각국의 유명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사회문화적 가치와 경험을 공유한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현대자동차의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가 참여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의 홈페이지


빕 그루망에 선정된 음식점 중에서 면류로는 칼국수와 냉면이 눈에 띈다. 칼국수를 파는 음식점은 만두 전문점을 포함해 5곳이 선정되었고, 냉면이 유명한 가게로는 4곳이 선정되었다. 칼국수는 뜨끈하고 감칠맛나는 국물로, 냉면은 이열치열의 묘미로 한 끼를 간편하고도 알차게 해결할 수 있는 메뉴다. 특히, 칼국수와 냉면은 하나의 문화 현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인스타그램에 칼국수와 냉면이라는 해시태그를 입력하면 각기 25만 개의 게시물이 검색될 정도다. 칼국수와 냉면은 최근 맛을 중시하며 고가화되는 경향도 있지만, 대중의 일상 속 한 끼라는 빕 그루망의 가치에 적합하다.


빕 그루망에 등재된 강남의 한 칼국수집



인간의 즐거움 중 먹는 것은 가장 비중이 크다. 바쁜 와중에도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한 끼는 삶에 아주 작은 여유를 내어준다. ‘불백’이든 빕 그루망의 메뉴든, 그 음식들이 주는 여유가 모여, 이 도시에 풍요로운 정서의 한 상을 차려낸다고 해도 지나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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