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있는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다양한 사회상에 비친 사람들의 욕망을 바로 들여다볼 줄 알았다. 물론, 그 안에는 자신의 욕망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무수한 욕망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상에 형상을 부여해 왔으며, 이는 거리의 풍경이 되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깊은 관찰력과 혜안으로 자동차 역사에 이름을 남겨 온 디자이너들과 그들의 역작을 흐름별로 살펴본다.



미국 머슬카의 전설 - 할리 J. 얼 & 필립 T. 클락


자동차 디자인이 오늘날처럼 제조사 안에서 강한 존재감을 갖게 된 것은 대략 1920년대부터다. 당시, 제너럴 모터스의 경영자 알프레드 슬론은 분업을 시스템화하며, 디자인을 전담하는 부서를 별도로 설치했다. GM 디자인 부서의 초대 수석 디자이너는, 후일 최초의 전시용 차량, 즉 콘셉트카인 뷰익의 와이잡(Y-Job)을 디자인한 할리 J. 얼이었다. 부친 역시 자동차 공방의 엔지니어였던 그는 할리우드에서 나고 자랐으며, 스탠퍼드대와 매사추세츠 공대(M.I.T)를 졸업했다. 그는 뷰익의 와이잡부터 훗날의 콜벳까지, 유려하고 긴 선과 근육질적 면의 미학을 십분 살렸다. 특히, 전장 5,000㎜가 넘는 차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긴 오버행은, 쭉 뻗은 미국의 고속도로에서 더욱 돋보이는 디자인이었다. 여기에 후미의 테일핀 등 과시적 면모도 강했다.


할리 J. 얼이 디자인한 뷰익의 와이잡


GM의 라이벌이자 미국 자동차 제조사의 원조임을 자부하는 포드는 현대적 머슬카 디자인으로 자동차 산업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이를 주도한 디자이너가 필립 T. 클락이다. 그는 GM에서 자동차 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했으며, 1962년에 포드의 디자인 부서로 이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그는 ‘알레그로’라 명명된 미드십 쿠페의 디자인 작업에 투입됐다. 위스키로 유명한 테네시주 출신인 그는 캘리포니아의 패서디나 아트센터 칼리지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는 여행길에서 본 미국 야생마인 머스탱의 역동적인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가 이를 머스탱의 라인에 반영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머스탱을 자동차의 이름으로 제안했다. 머스탱 특유의 ‘러닝 호스’ 엠블럼 역시 그의 작품이다. 그러나 운명이 그의 재능을 시기했는지, 그는 1968년 불과 33세의 나이로 요절함으로써 전설이 됐다.


필립 T. 클락이 디자인한 포드 머스탱



디자인 사관학교,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


유럽에서는 자동차의 외관과 인테리어 등을 별도로 제작하는 공방이 발달했다. 이는 마차를 제작하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들은 양산차 제조사 및 스포츠카 제조사와 인연이 깊은데, 폭스바겐 골프와 포니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르제토 주지아로 역시 카로체리아인 베르토네와 가이아에서 잔뼈가 굵었던 인물이다. 피닌파리나 가문도 60년 이상 협업해온 페라리를 필두로, 마세라티, 알파로메오 등 자국 제조사의 주요 차량들은 물론, BMW, 유럽 현대자동차의 매트릭스(국내 출시명 라비타) 등을 디자인해 왔다.


카로체리아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유럽 현대자동차의 매트릭스(라비타)


세르지오 피닌파리나를 기린 페라리의 세르지오 콘셉트카


카로체리아 출신들이 다시 자신만의 카로체리아를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밀라노에 위치한 자가토다. 설립자인 우고 자가토 역시 란치아 등에 디자인을 제공한 카로체리아인 바레시나에서 일했다. 특히 자가토는, 1920년대 레이스카 디자인을 거쳐, 2차대전 이후 페라리 등과 협업하며 넓고 유려한 차체의 면을 강조한 파노라믹 디자인을 선보였다. 자가토는 현재 애스턴 마틴, BMW 등과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갖고 있으며, 각 모터쇼 시즌마다 새로운 디자인의 차량을 선보여 오는 중이다. 이 외에 페라리 288 GTO의 디자이너인 레오나르도 피오라반티도 피닌파리나를 떠나 자신만의 카로체리아를 이끌어 오고 있다.


자가토가 디자인한 애스턴 마틴



타고 싶은 자동차를 만들었던 열정파 - F. A. 포르쉐


자동차 디자이너는 먼저 자신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소비자를 설득시킬 수 있다고 한다.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이하 ‘F.A. 포르쉐’)가 이런 가치를 실천한 대표적인 디자이너였다. 911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그는 미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을 지녔다. 여기에 스위스에서 수준 높은 엔지니어링 및 정교한 디자인 교육, 보쉬에서의 혹독한 인턴 과정을 거쳐 포르쉐에 자리잡았다. 그는 아버지 페리 포르쉐의 작품인 356 기반의 754를 시작으로 자동차의 제작과 디자인을 총괄하기 시작했으며, 1963년에는 수평대향 6기통의 911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선보였다. 그는 차체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고 밸런스에 집중했다. F. A. 포르쉐는 2012년 4월 5일에 눈을 감았는데, 그 날은 7세대 911이 그 해 뉴욕 모터쇼에서 ‘올해의 자동차’에 선정된 날이기도 했다.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왼쪽)


포르쉐 911



다이하쓰 코펜의 아버지 - 이시자키 히로후미


일본에도 이런 열정적인 자동차 디자이너가 있다. 한국에서도 젊은이들에게 패션카로 잘 알려진 다이하쓰 코펜, 그 창시자인 이시자키 히로후미다. 그의 디자이너 인생은 한 편의 애니메이션과도 같다. 프리우스의 디자이너이자 ‘미스터 하이브리드’라고 불리는 야에가시 타케히사와 편지를 나눈 것을 계기로, 야에가시 타케히사가 졸업한 홋카이도대 미대에 진학했지만, 정작 대학에서는 수영에 빠져 자동차는 까맣게 잊었다. 그가 그린 자동차 스케치에 감탄한 혼다 디자이너가 대학으로 직접 찾아왔지만, 수영 경기를 핑계로 그 디자이너를 그대로 세워두었다는 것도 전설이다.


이시자키 히로후미의 다이하쓰 코펜


혼다에 입사하긴 했지만 갑자기 모터사이클 부서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즉시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그는 입사부터 좌충우돌이었다. 결국 그는 7년 뒤, ‘혼다에서의 일이 재미있느냐’고 묻는 다이하쓰 스카우트 담당자의 물음에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혼다에 안녕을 고했다. 요즘 직장인들에게는 꿈만 같은 이야기지만 이시자키 히로후미의 사례는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있어, 필요한 성격, 즉 좋아하는 것에 미칠 수 있는 자질을 말해준다. 그의 성격처럼 그가 디자인한 자동차들인 옵티, 네이티드, 코펜 등은 직관적인 선과 면을 자랑하는 실용적 경차다. 그는 지금도 자신이 디자인한 코펜을 타고 바삐 강연을 다닌다.



성장기 한국 자동차 디자인의 견인차 - 차종민


지금의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한국의 제조사들도 우수한 교육을 받은 인재들로 이뤄진 디자인 부서를 두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자동차의 미학적인 요소를 독자적으로 구현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같은 유명 디자이너로부터 받은 디자인을 한국인의 감성으로 소화하는 작업은, 제조사로서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이 일을 맡았던 디자이너가 바로 차종민 홍익대학교 교수이다. 그는 현대자동차 입사 직후인 1980년대 초, 영국 왕립대학(RCA)에 유학해 디자인을 익혔다. 국내에서는 두 번째 유학생이었던 만큼, 그 당시 그는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했다. 심지어 옆면 도어 유리창과 차체를 구분하는 ‘벨트 라인’이라는 용어도 한국에서는 듣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그의 손에서 탄생한 디자인은 스포츠 지향 자동차인 스쿠프부터, 그랜저 XG, 그리고  에쿠스에 이른다. 이러한 점에서 차종민은 성장기 한국 자동차 디자인을 책임진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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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스쿠프


에쿠스와 에쿠스 리무진



제약과 더불어 호흡하는 창의성 - 루크 동커볼케 & 하학수


람보르기니 수석 디자이너를 거쳐 현대기아디자인센터장을 맡으며 최근 그랜저 IG의 디자인을 총괄한 루크 동커볼케는 <그랜저 디자이너와의 대화>라는 자리에서 “세계는 나의 집이며 사무실”이라는 말을 전했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페루에서 태어나 유럽의 각 언어는 물론 인도네시아의 스와힐리어까지 할 줄 아는 코스모폴리탄이며, 모든 종류의 자동차를 섭렵한 자동차광이다. 링컨 MKX와 포드의 서브 콤팩트 SUV인 엣지 등을 디자인하고, 현재 현대자동차의 내장 및 스타일링 부문을 이끌고 있는 하학수 디자이너 역시 어린 시절 아르헨티나로 이민해 스페인어에 능하다. 머스탱 ‘러닝 호스’의 창시자인 필립 T. 클락처럼 패서디나 아트센터 칼리지에서 출신이기도 하다.


루크 동커볼케


루크 동커볼케 디자이너에게 질의하는 참가자


그렇다면 좋은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 이런 코스모폴리탄이어야 할까? 물론 유리한 점은 있다. 그러나 하학수 디자이너는 인터뷰에서 "평범한 것에서 영감을 얻는 열린 마음"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전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자동차, 특히 양산차 디자인에 놓인 수많은 제약을 직시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랜저 디자이너와의 대화> 중 하학수 디자이너


자신이 진행한 선박디자인을 소개하는 하학수 디자이너


흔히, 제약은 창의력의 적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제약은 때에 따라, 디자이너 자신이 속한 세상과 자신의 욕망을 관찰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특히 양산차 제조사에서 좋은 디자이너의 좋은 디자인은 이 제약을 커뮤니케이션과 관찰의 도구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때 태어났다. 루크 동커볼케처럼 명품 수제 차량을 만들던 제조사의 디자이너가 양산차 기업에서도 적합한 디자인을 구현해낼 수 있었던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머슬카와 콤팩트카, 카로체리아와 글로벌 양산차 제조사를 가리지 않고, 디자이너의 공통된 책무는 소비자를 유혹하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디자이너들은, 방법 면에서의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것이든 대중의 것이든 간에, 사람이 바라는 것에 대해 감각을 열고 관찰할 것을 요구한다. 시대를 선도하는 자동차는 그 안에 이미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계로부터 주목받는 명 디자이너의 자동차가, 낯설기보다 기시감을 주는 이유도 사람들 사이에 있는 욕망의 관찰에 충실한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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