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첫 사랑이 기억에 남듯, 첫 차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한국의 실질적인 자동차 역사는 이제 겨우 반 세기를 지났지만, 현재의 한국은 자동차 생산과 소비 면에서 세계적인 국가다. 그만큼 시기별 첫 차의 변화 역시 급변하는 사회상과 자동차 기술을 반영하며 누군가의 첫 차가 되기 위한 경쟁도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마이카’를 꿈속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던 시대부터, 취향에 따라 다국적 제조사의 자동차를 골라 살 수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별 ‘첫 차’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첫 차가 되는 것이 제일 쉬웠던 코로나와 코티나


드라마 <도깨비>의 주인공 써니(유인나 분)는 타고난 미모로 누군가의 첫사랑이 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쉬웠던 캐릭터다. 그렇다면 1960년대 한국의 자동차들은 그 희소성으로 인해 누군가의 첫 차로 기억되는 것이 가장 쉬웠던 자동차들이라 할 수 있다. 신진자동차 공업의 코로나가 바로 그런 자동차였다. 이 자동차의 기반은 토요타의 후륜 구동 소형 자동차인 코로나였다. 전장 4,110㎜, 휠 베이스 2,420㎜의 콤팩트한 차체에, 최고 출력 70hp를 발휘하는 1.5리터(1,490cc) 수랭식 엔진을 장착한 코로나는 세계적으로도 내구성을 인정받았다. 신진자동차는 토요타와 기술제휴를 맺고 일부 부품을 국산화해 1966년부터 이 차량을 국내에 판매했다. 당시 코로나의 국내 판매 가격은 83만 원 선으로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2,000만 원대 초중반의 가격이었다.


토요타 코로나


1960년대를 이끈 또 다른 차량은 현대자동차가 영국 포드와 기술제휴를 맺고 들여온 코티나였다. 75hp의 최고 출력, 12.2kg∙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한 1.6리터(1,597cc)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과 4단 수동변속기의 파워트레인을 장착한 이 자동차는, 신흥 부유층들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코로나와 같은 소형에 속했지만 전장 4,256㎜, 휠베이스 2,489㎜로 거주성과 안락감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도 인기의 요인이었다. 가격은 당시 110만 원,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거의 3,000만 원에 육박했지만 월 1,000대 가까이 팔렸고, 1973년에는 판매가 급증해 일시불로만 판매를 진행했을 정도였다.


영국 포드의 코티나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 브리사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는 자동차 수요가 급증한 시기였다. 특히 1,000cc대의 경형 엔진 자동차들은 실용성은 물론, 지금 보아도 매력적인 디자인을 갖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기아자동차가 일본 마쯔다와 손잡고 국내에 선보였던 브리사였다. 이 자동차는 마쯔다의 파밀리아의 2세대 차량을 들여와 재조립한 차량으로, 최고 출력 62hp의 직렬 4기통 1.0리터(985cc), 87hp의 1.3리터(1,272cc)의 두 가지 가솔린 엔진을 장착해 국내에 선보였다. 당시로서는 드물었던 오버헤드 캠샤프트 방식도 적용했다.

 

이 자동차는 정말 작았다. 전장 3,875㎜, 휠베이스 2,260㎜, 전폭은 1,540㎜에 불과했다. 하지만 외관은 당시의 디자인 미학이 집약된 것으로 지금도 높이 평가받는 차량이다. 마쯔다 파밀리아의 전 세대는 카로체리아 베르토네에 몸담은 시절의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것으로 그의 젊은 시절 디자인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차이기도 하다. 2세대 역시, 피아트 등 유럽 자동차를 닮은 전면 디자인에 트렁크 선을 간결하게 처리한 ‘플랫 덱’ 방식을 1세대로부터 물려받았다.


마쯔다 파밀리아 세단


하지만 첫사랑은 한결같이 아쉬운 끝을 남기는 법, 오일 쇼크 이후 경기 침체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가 차종의 통폐합을 강제로 결정한 1981년의 ‘2.28 자동차공업 통합 조치’로, 브리사의 판매는 위기를 맞았다. 본격적 ‘마이카’ 시대의 출발을 알렸던 만인의 ‘첫차’ 브리사는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또 다른 작품이자 경쟁자였던 현대자동차 포니에게 국민 ‘첫 차’의 자리를 내주고 짧은 삶을 마감했다.


기아자동차 브리사

1980년대 들어 첫 차로서뿐만 아니라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독주 체제를 굳힌 포니



1980년대 남녀의 데이트카?


32년 전인 1985년, 1월 4일에서 5일로 넘어가는 밤은 여느 때와 달랐다. 37년 간 이어진 심야 통행금지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인원의 합승과 총알 택시와 안녕을 고한 시민들은 자동차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특히,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자동차의 구입 연령도 조금씩 내려왔다.

 

케이블TV의 <밴드의 시대>라는 프로그램에서는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라는 모던 록그룹이 등장한 바 있다. 이 특이한 제목의 뜻은 ‘옛 남녀가 스텔라를 타고 데이트를 한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옛 남녀’는 1980년대 초반 태생인 뮤지션들의 부모를 의미한다. 그런 경우가 다수는 아니었지만 자동차가 생활의 멋과 여유를 위한 수단으로서도 점점 자리잡아가고 있었다는 의미다. 특히 스텔라는 첫 차가 반드시 경형이나 소형이어야 한다는 공식을 깨고 등장한 ‘준중형’이었다. 1983년 5월에 첫 선을 보인 이 자동차는 90일만에 1만 대 계약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전장 4,556㎜, 휠베이스 2,579㎜가 넘었던 스텔라는, 구입자들의 생애주기로 볼 때 연인의 차에서 자연스럽게 가족의 차로도 포지션을 옮기기도 했다. 엔진의 등급도 최고 출력 92hp의 1.4리터, 100hp의 1.6리터 그리고 당시로선 고출력 사양이었던 105hp의 1.8리터로 다양해, 첫 차를 넘어 ‘업그레이드’ 자동차로도 인기가 높았다. 이런 준중형 대열에는 전륜 구동 방식의 프레스토, 대우자동차의 르망 등이 합세하며 생애 첫 차로 간택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전설이 된 현대자동차의 스텔라


물론 1,500cc 이하 소형차의 계보를 잇는 자동차들도 여전히 첫 차로 인기가 높았다. 특히, 이 분야에서는 기아 프라이드를 제외할 수 없다. 1987년 3월 첫 선을 보인 전장 3,615㎜, 휠베이스 2,345㎜의 이 소형 해치백은 당시 1.1리터와 1.3리터 두 등급의 엔진을 장착했으며, 각각 330~360만 원대와 340~390만 원대로 출시됐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1,200만 원대 미만의 저렴한 가격이었다. 직선 중심의 간명한 디자인은 휠베이스 대비 여유로운 승차공간과 적재성을 선보였다. 따라서 레저나 여가를 즐기는 젊은 연인이나, 신혼부부들의 첫 차로 인기가 높았다. 이런 배경으로, 또한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린 몇 안 되는 해치백 장르의 자동차이기도 했다.




1리터의 눈물? 경제성 넘어 디자인 갖춘 패션카로


1980년대 후반부터는 한국에서도 차종이 다양해졌다. 동시에 운전자의 전체 생애주기로 봤을 때 추후 중형차를 구매하기 전 단계로 접하는 엔트리급의 자동차라는 개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브리사처럼 1,000cc 미만의 경차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1991년 ‘국민차’라는 슬로건을 달고 등장했던 대우자동차의 티코는 0.8리터(796cc)로, 일본 스즈키 알토 3세대를 기반으로 한 자동차였다. 변속기도 매우 심플해 4단 수동변속기와 3단 자동변속기 두 종류가 있었다. 1세대 차량의 최고 출력은 41hp에 불과했고 최대 토크 역시 6.0kg∙m를 겨우 넘겼다. 따라서 가계 소득의 신장에 따라 벗어나야 할 차량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뛰어난(수동 기준) 연비는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었다.


대우자동차 티코


경차의 라인업은 한국이 IMF 구제금융 도입에 의한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던 1990년대 말부터 대거 등장했다. 그러면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도 이 부문에서 주목할 만한 차량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97년 생산된 현대자동차의 아토스, 그리고 이와 플랫폼을 공유한 기아자동차의 비스토가 대표적이다. 특히, 이 자동차들은 이전 세대 프라이드나 티코 등 소형 및 경차가 지닌 딱딱한 디자인에서 벗어나 요소요소에 둥글고 유려한 선을 넣어 젊은이들에게 어필했다. 이 자동차들은 경차가 확실한 경제관념을 넘어 젊은이다운 정서까지 반영하기 시작했음을 알린 사례였다.


2016년 <현대자동차 드레스업카어워즈>에 출품된 현대자동차 아토스



첫 차의 고정관념은 깨졌다


첫 차의 구매조건이 반드시 우수한 경제성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1990년 스쿠프의 등장으로 깨졌다. 1970년대만 해도 자동차를 타고 학교에 가는 대학생을 신문이 ‘대사건’으로 다루고 지탄했지만, 이미 1990년대에는 <건축학개론>의 ‘재욱 선배’(유연석 분)처럼 중형차를 몰고 다니는 대학생들도 등장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자동차가 사회적 위치 표식이라는 정체성이 다소 옅어지면서, 첫 차의 선택 역시 개인의 취향이 존중받게 됐다. 특히, 여러 가지 프로모션 경쟁을 통해 몸값을 낮춘 수입 제조사의 자동차들이나, 날렵한 디자인 및 성능을 강조한 제네시스 쿠페 등의 고성능 국산 자동차들도 첫 차로 큰 인기를 누렸다.


준중형의 아반떼는 첫 차 영역에서 견고한 아성을 지켜오고 있다.


이러한 첫 차의 선택 경향은 자동차 디자인과 기술의 다양화에도 공헌하고 있다. i30, 벨로스터 등 해치백 차량은 개성과 실용성, 그리고 비슷한 유형의 수입 자동차에서 느낄 수 있는 순발력과 디자인적 감각으로 일정 이상의 마니아를 확보하고 있다. 물론, 첫 차 영역에서 견고한 아성을 지켜 온 아반떼를 포함한 준중형 역시 건재하다. 여기서 나아가 준중형 시장에서는 국산과 수입을 막론하고 점점 하이브리드나 전기 자동차의 라인업이 확대되고 있다. 이는 자신의 소비행위가 공익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가치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첫 차로서의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첫 차 선택에서 중요한 가치는 개인의 취향과 개성이 되어가고 있다


첫 차는 소비자 자신에게도 매우 의미 있지만, 자동차 제조사의 입장에서는 장기적 성장동력의 확보와도 긴밀하게 연결되는 과제다. 1970년대의 브리사가 20년 뒤의 경차 열풍을, 1990년대의 스쿠프가 현재 수입차로까지 번진 첫 차 스펙트럼 다양화를 예고했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오너들에게, 그리고 처음으로 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첫 차는 중요한 의미를 전달한다. 그 점에서 현재의 첫 차 트렌드 역시 미래 한국의 자동차 산업에 있어 중요한 키가 될 가능성이 높다.





▶ 체크 필수! 2017년 달라지는 알짜 자동차 관련 정보

꿈은 이루어진다! 입문용 고성능차 BEST9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