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유럽의 한 조사기관에 의하면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자동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4년을 넘는다고 한다. 자동차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자동차는 그 사람들의 시대적 생활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발전하고 또 사라지기도 했다. 급격한 한국의 자동차와 생활문화의 발전 속에서, 과거로 사라진 기술과 특징적인 자동차 생활문화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



20세기를 주름잡았던 최고급 헤드라이트


-헤드라이트 와이퍼-

지금은 올드카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장치로 헤드라이트 와이퍼를 들 수 있다. 국내에서는 수입차를 비롯한 일부 고급 자동차의 사치성 편의장비 정도로 여겨졌지만, 헤드라이트 와이퍼는 강설량이 많은 북유럽 지역에서는 혁신적이고도 요긴했던 기능이었다. 이 기능을 개발해 장착한 제조사 역시, 눈이 많이 내리는 북유럽 국가인 스웨덴의 사브였다. 이 장치는 헤드라이트 하단에는 워셔액 분사 노즐까지 장착해 폭설 시 야간 시야의 확보에 중점을 두었다. 헤드라이트 와이퍼를 장착한 대표적인 차종으로는 사브 9000, 볼보850,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W140)가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 기능은 고속 주행 시의 잦은 고장, 디자인 시 다른 요소들과의 이미지 충돌 등으로 등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한 제조사가 1980년대 중반까지 이를 적용한 바 있으나, 해당 차종이 단종됨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헤드라이트 와이퍼가 장착된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W140)


-리트랙터블 헤드라이트-


낮에는 눈을 감고, 밤에만 눈을 뜨는 자동차가 있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보닛에 헤드라이트를  적용한 리트랙터블(Retractable) 헤드라이트가 그런 이미지의 연출을 가능하게 했다. 이는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로터스 에스프리, 카로체리아 피닌파리나의 페라리 테스타로사를 비롯하여, BMW의 8시리즈 등 넓고 긴 보닛을 가진 차량에 장착되었다. 이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지면으로부터 일정 이상의 높이를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에 대한 해법이기도 했다. 당시의 일반적인 자동차들에 비해 이러한 자동차들은 지상고가 낮았던 까닭이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리트랙터블 기능이 잘 작동하지 않는 문제, 또한 헤드라이트를 올렸을 때 공기저항계수(Cd)가 증가하는 등의 난점이 있었다. 국내에 출시된 차량 중에서도 기아자동차의 엘란(로터스 엘란 기반)이 해당 기능을 갖고 있었으나 많은 선택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리트랙터블 헤드라이트는 소형 스포츠카로 인기를 누린 마쯔다 RX-7의 3세대(1991~2002) 기종까지 장착되며 존재감을 굳힌 바 있다.


리트랙터블 헤드라이트를 탑재한 로터스 에스프리



진화하거나 부활하거나


-린번 엔진-

한국 경제는 변동성이 높고, 유가 역시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동차의 선택에 있어 연비는 대표적인 부분이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한 번 주유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이라는 엑센트 린번(Lean Burn)의 CF가 많은 소비자들을 유혹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다. 물론, 린번 엔진이 이 때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 1991년 현대자동차가 20:1의 공연비(공기와 연료의 비율)로 25km/L 이상의 연비를 구현한 바 있다. 


액센트 린번의 공연비는 14.7:1 정도로 실험적으로 개발되었던 1991년의 엔진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엑센트는 이 공연비로도 18.9km/L의 연비(구연비 기준) 구현했다. 1998년 연간 자동차 등록 대수가 감소할 정도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어 있던 시절, 동급의 경쟁 기종들이 약 15km/L 정도의 연비를 보였던 것에 비하면 액센트 린번의 연비는 큰 경쟁력이었다. 이러한 린번 기술은 사라지지 않고, 직분사 방식과 시너지를 이루어, 초희박(공연비 40:1)상태에서도 연소가 가능하도록 진화했다. 


초기형 아반떼에 장착된 린번 엔진


-로터리 엔진

로터리 엔진은 낮은 배기량으로 큰 출력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일반적 엔진이 피스톤의 직선 운동을 크랭크축의 회전으로 변환하는 방식과 달리 로터리 엔진은 회전만으로 동력을 얻는다. 통상 3개의 연소실이 있고 각각의 연소실은 흡입, 압축, 폭발, 배기의 4행정을 거치는데, 다른 한 연소실의 폭발과 배기 행정이 이어지는 연소실의 압축과 이어져 있다. 따라서 1회전에 3회의 폭발이 일어나 그만큼 엔진이 하는 일의 양, 즉 최고 출력이 높아진다. 하지만 로터리 엔진은 삼각형 모양으로 생긴 로터(회전 장치)가 엔진 하우징의 벽과 충돌을 일으켜 결국 내구성이 약하다는 치명적 단점을 안고 있었다. 또한 낮은 연비와 배기 가스도 문제였다. 따라서 지난 세기 유일하게 로터리 엔진을 장착한 양산차였던 마쯔다 RX시리즈도 2012년 단종되고 말았다. 

 

그런데 2015년 도쿄 모터쇼에서 마쯔다의 마사미치 코가이 사장은 뜻밖에도 새로운 로터리 엔진 개발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는 그 해 5월 토요타와 맺은 하이브리드 기술 관련 업무 협약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관측이 유력했다. 즉, 토요타는 적은 배기량으로 높은 출력을 내는 마쯔다의 로터리 엔진 기술, 마쯔다는 오염 물질 저감을 위한 하이브리드 기술을 공유할 계획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직 그 결과물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으나, 지속적으로 매출 신장과 기술 발전 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두 기업이 손을 잡은 만큼 가시적 성과가 나올 때가 머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마쯔다 RX-8에 탑재된 로터리 엔진



옛날 운전자들이 더 행복했다? 지도와 무료주차장


-전국 도로지도

캐나다의 맥길대학교 연구진은, 자동차 운전자가 내비게이션에만 의존하면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 영역인 해마가 빨리 퇴화해 치매에 걸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뇌 건강에 관해서만은 옛날식 운전 문화가 더 유리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내비게이션이 등장하기 전, 자동차 운전자들은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구입한 지도책을 자동차 안에 구비하고 있었다. 첫 페이지는 여러 겹으로 접힌 거대한 전국 지도가 있고, 책장을 넘기면 각 도별 상세 지도가 있었다. 이 지도에는 각 지역을 통과하는 고속도로 및 국도, 지방도 등의 정보를 포함해, 명승지와 관광 정보를 포함하고 있었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맛집 정보도 표현할 수 있었으니, 한국식 미슐랭 가이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내 무료 주차장-

뇌건강 뿐만이 아니다. 과거 운전자들은 주차비 문제에서도 걱정이 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지금도 주차 금지구역임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공터에는 슬쩍 주∙정차를 할 수 있지만, 서울 시내에서는 그런 곳을 찾기가 거의 어렵다. 그런데 1990년에 들어서기 전만 하더라도, 서울 한복판이라 할 수 있는 주요 시설물의 주차장이 공짜였다. 1991년, 무료 주차장이 사라진다는 한 신문기사의 내용을 보면, 현재 높은 주차요금이 발생하는 서울 주요 대형 병원 및 백화점 등이 그 시점에서야 유료화를 선언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한국 전체의 자동차 등록 대수는 400만 대, 현재의 1/5 수준이었다. 그러나 건물이 없는 나대지를 이용한 무료 주차장은 1990년대 초중반까지 있었다. 그것도 역삼동, 대치동 등 지가도 높은 곳이다. 게다가 이런 무료 주차 시설의 건립에 주민들이 크게 호응했다. 그만큼 인심이 좋았던 것일까? 그보다는 당시 개인 소유의 땅을 공익 목적에 사용하면 세금을 감면해준다는 지방세법 규정 덕분이었다.




운전 매너도 시대별 유행이 있다


최근 보복 운전 및 난폭 운전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상향등을 남발하면 과태료를 물기 십상이다. 하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상향등(상황 및 지역에 따라서는 비상등)은 다른 의미를 가졌다. 사각지대에 잠복해 스피드 건으로 과속단속을 하는 경찰차를 발견하면, 반대편에서 이를 모르고 과속하던 차량에게 경찰 단속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행위였다. 이는 엄밀히 경찰의 공무 집행을 방해하는 행위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운전자들 간에 온정 아닌 온정으로 통했던 행동이기도 했다.


상대방 운전자의 눈부심을 유발하는 상향등


자동차는 사람들의 일상 변화와 그 속에 담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빠르게 발전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발전한 자동차로 인해 생겨난 변화에 적응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왔다. 그 과정에서 잊혀지거나 새롭게 진화한 형태에 자리를 물려준 기능 및 운전 문화들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화들이 지금 잊혀졌어도, 현재의 자동차 문화의 기반이 된 역사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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