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방과 심실의 구조가 동물의 유형을 나누는 기준이듯, 자동차 실린더의 구조와 배열 방법은 엔진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또한 실린더의 구조 및 배열은 무게중심, 출력, 진동, 소음 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므로 엔진 설계의 기본적인 요건에 해당한다. 사실, 양산차의 실린더 배열과 구성은 그 경우의 수가 한정적이지만, 높은 효율과 강력한 동력 성능을 구현하기 위한 새로운 연구는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자동차의 특성과  정체성을 담고 있는 실린더의 배열 방식에 대해 살펴본다.



섀시 공간과 성능의 최대공약수


자동차 중에는 가끔 실린더 5개가 직렬(인 라인, 이하 대문자 'L' 뒤 숫자로 표기)로 배치된 엔진을 장착한 차량들을 볼 수 있다. 1930년대 헨리 포드에 의해 개발된 것으로 알려진 이 엔진은 제2차 세계대전의 트럭들에 사용되었다. 본격적으로 승용차에 탑재된 것은 1974년으로, ‘OM617’이라 불리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디젤 엔진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L5 엔진은 L4엔진보다 진동과 소음이 적게 발생한다는 것이 장점이다. 엔진의 흡입, 압축, 폭발, 배기라는 4행정은 크랭크축이 총 720°, 즉 두 바퀴를 회전해야 한 번의 폭발력을 얻는다. 이때 720°를 실린더의 개수로 나누면, 하나의 행정에 필요한 회전 각도를 계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L4 엔진의 경우, 720°를 4로 나눈 값인 180°마다 각 행정이 이루어지나, L5 엔진은 144°에 행정이 이뤄지므로 실린더들의 폭발 간격이 짧아지고, 최고 출력이 증가한다. 따라서 크랭크축의 회전 역시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L5는 같은 장점을 가진 L6 엔진보다 짧아, 특히 FF(앞 엔진-전륜구동) 차량에 배치가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다. 기존의 L4 2.0리터(1,984cc) 엔진에 실린더 한 개만 추가한 길이이므로 부품 공유로 비용이 절약되고, 과급기 및 자동변속기를 장착할 공간도 여유로워진다.


아우디 TT RS(MK3)의 5실린더 엔진


L5 엔진을 애용한 자동차 제조사로는 아우디, 볼보, 벤츠가 있다. 아우디는 지금도 RS3와 TT RS에 터보차저를 조합한 L5 엔진을 장착한다. 볼보는 지난 2015년까지 L5 2.4리터 디젤 엔진을 생산했다. 벤츠는 지난 2004년까지 ML클래스(W163) 기종에 L5 2.7리터 엔진을 탑재한 바 있다. 일부 국내 제조사도 메르세데스 벤츠의 5실린더 차량을 적용한 SUV를 판매한 바 있다.

   

그러나 L5 엔진은 독특한 구조로 인해 생산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단점이기도 하다. 또한, L4 엔진의 제작 기술력이 축적되며, L5 엔진 못지 않은 출력과 정숙성을 가지게 되었다. 볼보도 L4 2.0리터 엔진으로 L5를 대체했으며, 메르세데스 벤츠 역시 L4와 V6엔진으로 ML의 L5 엔진을 대체했다. 더군다나 최근 메르세데스 벤츠는 실린더 블록의 모듈화를 통해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인 3.0리터 L6 형태의 가솔린 엔진(M256)을 개발해, 2017년에 출시할 S 클래스부터 적용한다는 복안이다. 즉, 실린더의 개수를 희생하지 않고도 공간 배치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기술력이 확보된 셈이다.


볼보 S60의 2.4리터 5실린더 디젤 엔진



지상의 고래를 꿈꾸는 고배기량 다기통 엔진


실린더가 일정한 각도를 두고 마주보는 V형 엔진은 배기량의 증가와 함께 필연적으로 발달한 실린더 구성 방식이다. 영화 <매드 맥스>에서 ‘임모탄 조’의 병사들인 ‘워보이’들이 외치는 ‘V8’이라는 구호도 V형 구성의 8실린더 엔진으로부터 온 것이다. V형 엔진은 극단적인 배기량의 대형화도 가능케 했는데, V12 엔진이 대표적이다. 초기의 W12엔진은 마쯔다가 개발을 시도한 L4 엔진의 3뱅크(열) 배치였다. 하지만 실용성의 문제로 상용화에 실패했다. 이를 살린 것은 V형 엔진 2개를 결합해 제작한 2뱅크의 W12엔진을 만든 폭스바겐이었다.

   

폭스바겐의 W12엔진을 설명하기 전에 VR6라는 엔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폭스바겐의 VR6 엔진은 V형 엔진과 직렬 엔진의 장점을 결합한 엔진으로, 실린더를 V형으로 배열하되 뱅크각을 평균적인 V형 엔진의 60°의 1/4인 15°로 만들어, 다실린더임에도 부피의 증가는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는 기존 V형 엔진 보다 무게중심이 높은 W12엔진이 소음과 진동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힘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 엔진은 정숙성을 요구하는 고급 차량에 적합한 것이었다.


폭스바겐 페이톤에 장착된 12실린더 엔진


W12엔진을 탑재한 차량은 역시 폭스바겐 그룹의 차량들이 대부분이다. 폭스바겐의 페이톤과 투아렉, 아우디의 플래그십 세단 A8의 최상위 트림에 이 엔진이 탑재된다. 또 다른 폭스바겐 가의 형제인 벤틀리 역시 컨티넨탈 시리즈와 벤테이가에 이 엔진을 장착했다. 이 외에 페라리의 F12 베를리네타, 람보르기니의 무르시엘라고 등이 12실린더의 엔진으로 유명하다.

   

물론, 단점도 존재한다. 우선 W12를 비롯한 12실린더 엔진들은 회전 시 내부온도가 수백℃ 에 달하는 실린더들이 모여있는 까닭에 냉각 효율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이에 더해 높은 온도의 배기가스를 이용하는 터보 차저가 장착되면, 실린더 내의 온도는 더욱 고온으로 올라간다. 따라서 그만큼 냉각 장치의 성능도 담보되어야 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비용도 높아진다. 12개를 초과하는 실린더를 가진 엔진은 현재의 자동차 산업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고, 1920년대와 1930년대 마세라티 및 알파 로메오 등의 제조사에서 제작한 레이스 차량에 V16 엔진이 적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페라리 F12 베를리네타의 엔진



의외로 넓은 범위의 수평대향 엔진


수평대향 엔진은 크랭크축을 중심으로 실린더가 좌우로 나란히 배치되는 엔진이다. 따라서 V형 엔진보다 무게 중심이 낮다. 여기에 한 쪽의 실린더가 움직이면서 생긴 관성을 반대방향의 실린더가 상쇄시켜 조향 성능을 제고한다. 또한 고회전 영역에서 엔진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수평대향 엔진으로 유명한 자동차 제조사들이 스바루와 포르쉐 등 날카로운 조향성을 지닌 스포츠카에 강점을 갖고 있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보면 수평대향 엔진은 완벽할 것 같지만, 많은 제조사들이 사용하지 않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엔진오일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V형과 직렬 엔진은 중력에 의해 엔진오일이 자연스레 흘러내리지만, 수평대향 엔진의 경우에는 엔진오일이 지면 가까운 쪽에 몰리기 쉽다. 또한, 실린더의 아랫부분에만 마모가 집중되며, 깊고 낮게 위치한 엔진 때문에 정비가 용이하지 못한 점도 꼽을 수 있다.


수평대향 엔진의 실린더 구조


하지만 수평대향 엔진 역시 한계를 딛고 발전 중이다. 특히, 스바루는 디젤 엔진에도 수평대향 기술을 적용했다. 2000년대 후반, 유럽을 겨냥한 차량인 레거시와 임프레자 등에 장착된 수평대향 디젤 엔진은 보어와 스트로크를 모두 86㎜로 설정하는 스퀘어 방식을 택해 압축비가 일반적인 디젤 엔진 보다 낮다. 그러나 낮은 온도에도 자가 착화할 수 있도록 고압으로 연료를 분사할 수 있는 인젝터를 자체 개발해 한계를 극복했다.


스바루의 수평대향 디젤 엔진



민감한 환경 문제에 다시 주목받는 2, 3실린더


페이턴트 모터바겐과 올즈모빌의 커브드 대시 등 초기의 자동차들은 단기통 엔진을 장착하기도 했으나, 현재의 양산형 자동차 산업에서는 2, 3실린더가 가장 간소한 구성이다. 이러한 소(少)실린더 엔진의 장점은 무엇보다 경량화와 효율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섀시 공간의 여유로 과급기도 원활하게 장착할 수 있어 성능의 개선도 쉽게 가능하다. 반면, 단점도 분명하다. 직렬 방식을 택할 경우 별도의 크랭크 축을 통해 두 개, 혹은 세 개의 피스톤이 동시에 상하운동을 하기 때문에, 소음과 진동이 크다.


피아트의 2실린더 엔진


1980년대 후반까지 생산된 시트로엥의 2CV가 2 실린더의 차종 중 대표적이나, 현재까지 생산하고 있는 2실린더 엔진 차량으로는 피아트와 다이하쓰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피아트는 자사의 소형차인 친퀘첸토(500)에 기존의 L4 1.4리터 자연흡기 엔진 대신, L2 0.9리터 터보 엔진을 장착했다. 최고 출력도 105hp에 달하는데, 이는 기존 L4 엔진보다 3hp 높은 수치다.

   

3실린더 엔진은 드물게 V형도 적용된 바 있었으나, 대세는1970년대 후반 스즈키에 의해 상용화된 3실린더 엔진이다. 3실린더 엔진 역시 최근 다운사이징 열풍과 더불어 다시 주목받고 있다. BMW는 2018년식 3시리즈의 엔트리급 트림인 318i에 L3 엔진의 장착을 예고하기도 했는데, 이는 현재 미니 컨버터블에 적용된 1.5리터 엔진으로도 인기가 많다. 그간 경차와 소형차에만 탑재되는 것으로 인식되던 3실린더 엔진의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향후  배출가스 규제가 더욱 까다로워지고 전기모터와의 조화까지 생각한다면 적은 실린더로 구성된  엔진은 중요한 엔진 구성으로 주목 받을 가능성이 크다.


기아자동차 모닝의 3실린더 엔진


3실린더 엔진의 미니 컨버터블


자동차의 발전사는 제약 속에서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의 창의력이 어떤 것인지를 잘 대변해준다. 자동차의 섀시라는 공간이 한정되지 않았다면 실린더의 배열 방법 역시 다양하게 연구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자동차 제조사 엔진의 개별적인 매력 역시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2017년에는 또 어떤 방식의 실린더 배열이 자동차 마니아들을 놀라게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클릭하시면 이벤트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내 차와 ‘케미 돋는' 엔진오일 선택 방법

▶ 자동차의 애정표현! 미래 운전자를 위한 실내 인터페이스

▶ 여자의 시선으로 본 아이오닉 하이브리드 시승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