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공개된 <전기자동차를 누가 죽였나?(Who killed the electric car?)>라는 다큐멘터리를 아시나요? 이 다큐멘터리는 모종의 음모론에서 출발합니다. 미국 General Motors의 ‘EV1’은 1996년에 출시된 전기차로, 에어로 다이내믹한 스타일과 내연기관 못지않은 성능을 보유해 지구온난화에 대처할 수 있는 친환경차의 대표주자로 여겨졌습니다. 이 차는 당시 소비자들이 배출가스 없는 전기차를 이용함으로써 지구를 지키는데 동참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게도 했는데요.


불행히도 ‘EV1’은 1999년을 끝으로 생산을 중단, 2002년 GM으로부터 강제 수거 당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이유인즉슨 자동차 기업들이 캘리포니아 주를 상대로 제소한 ‘배기가스 제로법’ 철회 소송에서 승소했기 때문인데요. 수익이 나지 않는 차를 굳이 생산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을까요? 세간에서는 당시 정유회사의 로비도 한몫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전기자동차의 부활 


 

▲<Who killed the electric car?> 포스터, 2006


필자가 문득 이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2006년 이 다큐멘터리를 처음 접했을 무렵 필자는 GM으로 이직을 했고, 처음 시작한 프로젝트가 정말 우연히도 전기차(정확히는 PHEV)였으며, 그 이후로도 6년이라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전기차 프로젝트에 매진했습니다. 이쯤 되면 전기차는 필자와 나름 깊은 인연이 있는 차라고 할 수 있겠죠.


다큐멘터리 속 ‘EV1’은 서글픈 운명을 맞이했지만 현재는 한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나라와 자동차 기업에서 친환경차, 즉 전기차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이는 최근 세계 각국의 친환경 정책이 강화됨에 따라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 차량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자동차 업계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로 떠오른 전기차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과거로부터 온 미래’ 전기차의 역사


▲Parker's electric cars, photo around 1895 (출처)


흔히 ‘전기차’하면 친환경, 하이테크 등과 같은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가진 키워드들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전기차의 역사는 생각보다 더 오래된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1828년 헝가리인 아뇨스 제드릭이 초기 전기모터를 발명해 작은 모형차를 제작하였고, 1834년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앤더슨에 의해 최초의 전기자동차가 탄생했습니다. 


실제 실용성이 있는 전기자동차는 1835년 미국인 토마스 데븐포트에 의해 제작된 차량이 시초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후 발전을 거쳐 1897년에는 최초의 전기택시가 뉴욕의 거리를 누비기도 했습니다. 바야흐로 1900년부터는 미국의 전기자동차 시장이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한 때 미국 전체 자동차의 28%가 전기차였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렇듯 역사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전기차를 ‘과거로부터 온 미래’라 칭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그러나 전기차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1908년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 방식의 대량생산으로 가솔린 차인 ‘모델 T’를 양산하면서 미국 자동차 시장의 판도가 뒤바뀌었기 때문인데요. 이로 인해 전기차의 단점인 비싼 가격, 짧은 주행거리, 파워 부족, 충전 문제 등을 보완하는 가솔린차의 시대가 막을 열게 됩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솔린 자동차의 전성기는 이미 100여 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만, 1960년대부터는 가솔린 자동차의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의식이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70년대 석유파동을 계기로 사람들은 새로운 대체에너지 자동차의 필요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됩니다.


1990년대 이후 세계 각국에서 환경오염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친환경 정책들을 내놓으면서 대체에너지 차량에 대한 요구 또한 더욱 증대되었는데요. 특히 2009년 미국 오바마 주도의 ‘그린 뉴 딜 정책’에 부응한 대기업들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Plug-in Hybrid Electric vehicle)를 출시하면서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 자동차의 시장규모가 급속히 성장하게 됩니다.


국내 전기차 동향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일렉트릭’


세계적인 전기차 개발의 흐름은 이제 국내 도로에서도 드물지 않게 목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폭스바겐으로부터 촉발된 일명 '디젤 게이트'로 디젤 차량 판매가 주춤하고 있고, 정부의 전기차 보급 정책을 발판 삼아 국내 기업들이 앞다투어 전기차를 선보이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국내의 경우 2016년 기준 전기차 판매량 1위는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일렉트릭’으로, 전체 전기차 판매량의 64%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이오닉’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기존 가솔린차를 변형한 모델이 아닌 친환경 전용 플랫폼을 개발한 독자적인 모델이라는 점인데요. 이를 바탕으로 현대는 하이브리드, 전기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친환경차를 속속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치열한 친환경차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현대차의 적극적인 대응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더 나아가 현대차는 2021년까지 전기차 전용 플랫폼 개발을 완료하고 차세대 전기차에 적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전기차 디자인의 특징

 

▲전기차의 구조 (출처)


위 이미지는 전기차의 구조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언뜻 봐도 기존 자동차와는 사뭇 달라 보이죠? 사실 자동차는 차종마다 조금씩 다른 특징과 개성을 갖고 있지만, 가솔린차와 전기차 간에는 좀 더 명확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바로 차량의 기본적인 구조인데요. 


먼저 가장 큰 차이점은 구동 방식입니다. 가솔린차는 가솔린 연료가 엔진을 거쳐 바퀴에 전달되는 방식이고, 전기차는 배터리의 전력이 전기모터를 거쳐 바퀴를 구동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이유로 엔진의 냉각을 위해 가솔린차에 탑재된 라디에이터 그릴을 전기차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구조 특성상 전기차에는 라디에이터 그릴이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오닉 하이브리드 / 전기차 그릴 비교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가솔린차 디자인에 익숙해져 있어 전기차 특유의 앞이 막힌 그릴을 다소 답답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같은 이유로 현재 시판되고 있는 전기차들은 여전히 라디에이터 그릴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데요. 갑작스러운 디자인의 변화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약화시키는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생물이 서서히 진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외에 전기차의 외형적인 특징으로는 에어로 다이내믹한 요소들을 갖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사실 에너지 효율을 고려하는 측면에서 가솔린차 역시 공기역학을 강조한 디자인 요소를 사용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차의 경우, 보다 적극적으로 공기역학을 우선시하는 디자인을 선보이게 되는데요. 차체의 굴곡을 최소화해 공기의 흐름을 유연하게 하고, 후면 범퍼의 코너는 ‘트레일링 엣지’라고 하는 모서리를 적용해 차체 뒤로 흐르는 공기의 와류현상을 최소화, 공기저항계수를 줄이고 있습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트레일링 엣지’


휠 디자인도 공기 저항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차량 공기 저항의 약 15%는 휠 주변에서 발생합니다. 따라서 전기차의 경우 이러한 저항을 줄이기 위해 휠의 표면적을 넓히는데요. 아이오닉의 휠을 살펴보면 일반 가솔린 차량의 휠과 비교해 막혀있는 부분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전륜 안개등 주위에 휠 주변부 공기 흐름이 빠져나올 수 있는 ‘휠 에어커튼’도 장착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현대의 노력으로 아이오닉은 0.24라는 낮은 공기저항계수를 구현, 크게 개선된 공력 성능과 뛰어난 연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기차의 미래


정부는 올해 전기차 보급 목표를 1만 4000대로 정하고 전기차 지원 정책을 강화했습니다. 친환경 자동차와 소비자가 한층 가까워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으며, 이와 함께 국내외 기업들의 전기차 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더욱 다양해지겠죠?


전기차는 오래된 과거로부터 온 미래이자, 여전히 우리가 바라보고 나아가는 미래이기도 합니다. 기존 자동차에 비해 디자인 제약에서도 훨씬 자유로운 미래의 전기차는 디자이너의 상상력, 소비자의 욕망이 더욱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담기게 될 것입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친환경차 경쟁의 최후의 승자는 성능, 가격과 더불어 미래를 선도할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다방면에서 소비자를 두루 만족시키는 전기차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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